흐르는 것들은 아름답다
흐르는 것들은 아름답다
  • 이영숙 <시인>
  • 승인 2014.07.21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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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영숙 <시인>

오늘도 까치와 까마귀가 아침을 여는 소리에 일찍 눈을 떴다. 언제부터인가 이 시간이면 어김없이 공중의 소리들이 예약해둔 모닝콜처럼 아침을 깨운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잡는다고 저들의 새벽 밥상이 분주해진 것일까. 불청한 까마귀가 까치집을 탐하는지 숨넘어갈 듯한 여러 차례의 경고음이 있은 후에야 잠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얼마 전 학생들과 전래동화 『은혜 갚은 까치』에 대해 토론한 적이 있다. 논제는 새끼까치를 살리기 위해 구렁이를 죽인 선비의 행동이었다. 구렁이를 죽인 선비의 행동이 옳다고 생각한 학생은 까치는 착하고 구렁이는 나쁘다는 이유를 들었다. 침묵이 길어질 때 ‘까치는 착하고 구렁이는 나쁘다.’는 근거를 어디에 두느냐고 물었더니 까치는 인간을 해치지 않지만, 구렁이는 징그럽기도 하고 건드리면 공격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어 반대편 학생 중 하나가 시골에서 사과농사를 짓는 외할아버지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까치라고 반박했다. 맛있는 사과만 골라 쪼아놓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 옳다는 이유로 까치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됐고 구렁이는 결혼도 하고 살 만큼 살았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랬더니 반대 측 학생이 구렁이도 먹잇감을 구해 살려야 할 가족이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자 한 학생이 새끼까치 숫자가 구렁이보다 더 많으므로 구해야 하는 것이 옳다고 하였다.

냉정하게 토론과정을 지켜보던 한 학생이 자신보다 약한 새들을 먹잇감으로 하는 구렁이의 행동이 나쁜 일이라면 벌레를 먹잇감으로 하는 까치 또한 나쁘고 밥만 먹어도 되는 인간은 생선도 먹고 삼겹살도 먹기 때문에 더 나쁜 것이 아니냐고 되물었다.

학생들은 활발한 논의 끝에 까치처럼 구렁이의 목숨도 소중하다는 결론과 함께 ‘살아있는 모든 것은 수평이다.’는 확산적 사고를 도출하였다.

벤담의 주장대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최고선으로 학습 받은 결과라면 구렁이 여러 마리와 까치 한 마리일 때 앞의 숫자에 입각한 동일률 적용은 어렵다. 또한, 소크라테스의 선과 악에 대한 이분법의 정의처럼 착한 일을 하면 선이고 그렇지 않으면 악이라고 할 때 그때의 선하고 악한 기준 역시 모호해진다.

시대와 문화에 따라 선과 악의 기준은 달리 정의되지만, 이들이 그 구도를 통찰했다는 것만으로도 수업은 성공이었다. 기존의 우리가 행운과 불운의 아이콘으로 규정해놓은 까치와 까마귀에 대한 정의, 까치는 착하고 구렁이는 나쁘다는 식의 인간중심으로 분류된 이 땅의 정의들은 인간을 인식하는 주체로 규정하고 대상을 인식 당하는 객체로 규정한 폭력적인 사고체계라고 할 수 있다. 까치, 구렁이, 까마귀, 인간 모두 유기체로 어울려 살아가야 할 수평적인 존재들이다.

새벽 하늘을 달리던 존재들의 아침이 끝날 무렵엔 지상의 아침도 밥상으로부터 시작될 것이고 한낮엔 영역을 다지고 짝을 구하려는 매미들이 여름을 목청껏 울어댈 것이다. 흐르는 강물처럼 자연스럽게 생동하며 흐르는 것들이 지구의 아침을 여는 파란 시간이다.

※ 필자소개

충북 청주 출생. 한국창조문학가협회 시 부문 등단 「여자가 알을 낳다」(2004), 전국 비존재 문학회 동인. 시집 『우리가 눈물을 흘리지 않아 강물도 심장이 마른다』(2010). 현재 논술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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