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 책 속에 오묘한 이치 있으니(13)- 행복은 생각하기 나름
직지 책 속에 오묘한 이치 있으니(13)- 행복은 생각하기 나름
  • 박숙희 <청주시문화관광해설사·아동문학가>
  • 승인 2014.07.20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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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해설사에게 듣는 역사이야기
박숙희 <청주시문화관광해설사·아동문학가>

'직지' 책 속에 오묘한 이치 있으니, 열세 번째 이야기는 ‘직지’ 하권 1장에 나오는 아호 대의 화상의 여러 편 좌선명(鵝湖大義和坐禪銘)에 대한 글 중 한편이다. 전문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부산 화엄사 주지 각성 스님의 ‘직지’ 번역 및 강해(1998년) 등을 참조했음을 밝힌다.

명(銘)도 글의 명칭이다. 기(記)가 있고 서(書)가 있고 발문(跋文)도 있는데 명(銘)도 하나의 문체(文體)이다. 명(銘), ‘새길 명’자니까 좌우명처럼 새기는 것을 의미해서 좌우명처럼 명심하기 위한 글이다.



아호 대의 화상 좌선명은, 참선하여 도를 배우는 것이 몇 가지 모양이던고?

종요로운 것은 바로 공부하는 자신이 선택하는 것에 있다.

다만, 몸을 잊어버리거나 마음을 죽이지는 말 것이다.

바로 모름지기 앉아서 연원을 탐구할 것이니

이러한 도를 고금과 천하에 전해 왔다.

바로 앉아서 단정하게 태산같이 하되

우뚝하여 종요로이 공한(空閑)만을 지키지 아니할 것이니라.

 

공부하는 아도 대의 화상 자신은 바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잘 구분해서 아는 것이 능택(能擇)이라는 것이다. 즉 참선을 어떻게 해야 되는가를 잘 알아서 선택하는 것에 바로 종요로운 것이 있다는 것이다.

몸을 잊어버리거나 마음을 죽이지 말라는 것은 차가운 재와 마른 나무와 같이 몸과 마음을 다 잊어버리는 그런 식 참선학도(參禪學道)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하면 무색계천의 무상정이나 또는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 같은 데에 떨어지기 쉽기 때문이란다.

연원(淵源)은 마음의 근원자리이다.

깊은 마음의 근원을 잘 알아야 된다는 것이다.

고금천하(古今天下)는 동서고금(東西古今)과 같은 말이다. 천하란 말은 동서와 같은 말로 시간적으로는 고금이고 공간적으로는 천하다.

즉 현명하게 깨닫는 쪽을 더 보는 것이다. 이는 사리를 밝게 분별하는 것은 지혜가 되고, 고요한 것은 정해지는 것인데 지혜를 더 위주로 보는 것이 조사선(祖師禪)이라는 것이다.

단정하게 몸과 마음이 요지부동한 것은 태산과 같이 부동자세로 앉아서 공한(空閑) 한 것만을 지키지는 말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슬기로움은 어떻게 해야 되는지? 염념부매(念念不昧)로 정신이 반짝반짝 초롱초롱해야 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하루종일 생각하면서 살게 되어 있는 동물이다. 그런데 생각이라는 것을 해본 일이 없다고 한다면 이는 우리가 어떤 문제를 우리 머리로 찾아내 본 일이 없고 어떤 질문에 대한 해답이나 응답을 우리 머리로 생각해본 일이 없다는 것일 게다.

즉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나는 누구인가, 내 삶을 이끄는 가치는 무엇일 수 있는가, 삶의 의미는 어디서 얻고 목적은 어디서 구하는가? 이런 질문들은 정답이 없다. 이는 “무엇을 배웠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생각하게 되었는가”에 관심의 초점을 두라는 자기성찰 같은 것이기도 하다.

무엇이 나를 변화하게 하는가?

이 ‘염(念)’을 좌우명으로 새겨봄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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