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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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4.07.16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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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월드컵 결승전을 새벽에 간신히 봤다. 그것도 안 보면 너무 손해 보는 것 같아 종에 맞춰 일어나서 봤다. 연장전 후반에 들어가서는 졸았지만, 간신히 결승골이 들어가는 것은 제정신으로 볼 수 있었다. 우리 팀이 떨어져서 흥미야 반감됐지만 그래도 세계적인 축제인데 즐기지 않을 수 없다.

한쪽으로 기우는 듯한데 기습공격이라는 것이 있어 전체적으로는 균형이 있는 경기였다. 볼 점유율이 한쪽으로 70%에 가까울 정도로 반쪽 마당에서 놀고 있었지만, 가끔 벌어지는 역습에 긴장감은 더해졌다. 결국, 그것을 두려워하는 상대편은 후반전에 들어가면서 일방적으로 공격하지도 못했다. 한쪽은 체계적으로, 다른 한쪽은 개인적으로 공을 다루고 있었다. 하나는 정규군이라면, 다른 하나는 게릴라라고나 할까. 어느 싸움이 이길 줄은 아무도 모른다. 수적으로 불리하면 게릴라전이고 수적으로 우세하면 정규균일 텐데, 축구경기야 같은 인원으로 경기를 하니 뭐가 옳은지 모르겠다.

골은 들어갔지만 오프사이드(미리 들어가기)에 걸린 공격도 있었다. 선심의 깃발이 도드라졌다. ‘내가 들었으니 좋아하지 마라’는 강한 메시지가 담긴 깃발이었다. 양쪽이 마찬가지로 선심의 깃발에 실망했다.

그런데 주심이 멋졌다. 시종일관 웃는 표정인데도 선수들에게 단호했고, 글쎄 내가 어느 쪽 편을 들지 않아서일지도 모르지만, 객관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결승전 심판은 어느 심판보다도 최고의 경륜과 판단력을 보유한 사람이 맡겠지만, 축구를 보면서 심판이 눈에 들어온 것은 처음인 듯하다. 부드럽지만 날카로운 멋쟁이었다.

우리는 경기를 보면서 늘 심판을 탓한다. 그게 왜 오프사이드냐고 한다. 그게 왜 반칙이냐고 한다. 그리고는 눈이 삐었다, 돈을 먹었다 등의 원색적인 표현으로 심판을 비방하고서라도 우리 편이 이겼으면 한다. 사실 그런 부조리도 종종 발견되니 심판을 욕하지 않을 수도 없다. 공정한 놈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니, 죽일 놈이다.

나이 탓인가? 심판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주심의 그 부드러운 표정이 마음에 든다. 그러나 주저 없는 손짓에 나도 꿈쩍하지 못하겠다.

심판의 오심에 대해 사람들은 말이 많다. 오심이야 없어야 할 일이다. 그래서 이번 월드컵에서는 공이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나왔는지를 보기 위해 여러 대의 카메라를 장착했고, 그것이 심판의 손목시계에 즉시 전달되도록 했단다. 들어갔다 나온 공을 껴안고는 안 들어간 척해서 심판이 골을 인정하지 않은 적도 지난번 월드컵에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기계가 모든 것을 판단한다면 과연 경기가 재밌을까? 요즘은 다시보기 기능이 어디에서도 가능해서, 기록경기는 비디오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얼음지치기도 그렇고, 빨리 달리기도 그렇다. 발을 먼저 집어넣거나 가슴을 밀어 넣어 우승하는 경우도 있으니, 사람 눈으로 판독하기 어려워 생기는 일이다. 근래에는 테니스 경기의 인아웃도 선수가 한 게임당 1회 요청해 돌려볼 수 있다. 그래서 뒤집히기도 한다. 그래서 축구도 돌려보기를 해야 할까? 주심과 선심이 본부석으로 달려가 비디오판독을 해야 할까? 항의횟수는 몇 번으로 할까? 반칙, 핸들링, 골라인 등도 그래야 할까?

아닐 것이다. 심판도 경기의 일부다. 아니, 오판도 경기의 일부다. 그래서 더 재미있는지도 모르겠다. 내 삶이 오판의 결과인 걸 어떡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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