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의 서정
반딧불의 서정
  • 변정순 <수필가>
  • 승인 2014.07.13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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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변정순 <수필가>

밤사이 반가운 비가 내려 더위가 좀 식었다.

칠월 중순인데도 작년보다 훨씬 더운 여름날을 맞는 것 같다.

더워도 겨울보다 여름이 좋다.

여름은 더워서 좋고 추억이 많아서 더 좋다.

나의 여름 추억은 감꽃 목걸이를 만들었고 봉숭아 물을 들였다. 분꽃이 피기 시작하면 어머니의 보리쌀 씻는 소리도 들었고 장마가 지면 앞 개울의 물 구경하는 일, 멱 감던 일, 멍석에 누워 밤하늘의 별을 세고 있을 때 별똥별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는 일은 큰 행운의 징조라고 좋아했다. 어둠 속을 반짝거리던 반딧불을 벗 삼아 서리도 했던 일들은 여름이 준 귀한 추억이 되었다.  

반딧불이는 개똥벌레라고 불렀다. 옛날에는 반딧불이가 개똥처럼 흔하다고 해서 붙여졌다고도 하고 반딧불이의 특성상 습한 곳을 좋아해서 따뜻한 개똥이나 소똥이 식으면서 똥의 밑에 습한 공간이 형성되어 낮 동안 숨어 있다가 밤에 나오는 모습을 보고 개똥에서 나왔다고 하여 개똥벌레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말도 있다. 

반딧불이는 유충 때부터 깨끗한 물속의 다슬기나 달팽이를 먹고 산단다. 요즘은 농약도 농약이지만 공해로 인하여 산골 냇물 조차 심하게 오염이 되어 반딧불이가 발붙일 공간이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

이름도 예쁜 반딧불이를 생각하니 소녀 시절이 떠오른다. 그 시절 또래 소녀들의 시원한 여름 나기는 캄캄한 밤이 되면 종일 흘린 땀을 씻으려고 냇가로 몰려나가는 일이었다. 소녀들은 옷을 훌훌 벗어 던지고 등목을 하거나 멱을 감았다. 그때 반딧불이도 반짝반짝 꽁무니에 불을 켜고 여름밤 물가의 어두운 풀숲을 원을 그리며 날아다녔다. 여름밤의 서정을 자아내게 하는 밤의 전령들이었다. 반딧불이의 감상도 잠시 남자 또래들의 시끌벅적한 소리가 가까이 들려왔다. 허겁지겁 옷을 주워 입느라 젖은 발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옷을 물에 떨어뜨려 창피하여서 물속에서 꼼짝도 못하고 있었던 친구도 있었다. 그때 심정은 얼마나 겁에 질리고 무서웠을까. 냇물 저쪽에서 깔깔거리는 소녀들의 웃음소리와 첨벙첨벙 헤엄치는 소리가 짓궂은 사춘기 소년들에게 충분한 호기심을 발동시켰을 것이다. 반딧불이 수집을 핑계로 개울 여탕 같은 목욕 터를 훔쳐보는 피핑 탐 들이다. 담뱃불을 깜박여 반딧불로 착각하게 만들며 먼발치에서 멱 감는 처녀들을 훔쳐보려 했던 오빠들의 뒷얘기 또한 한여름 밤을 오싹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여름밤이면 반딧불이를 쫓아 다니고 뻐끔담배를 피우며 반딧불 흉내를 내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 소녀 소년들이 자꾸 생각나서 슬그머니 웃음이 나온다. 

요즘은 산골도 반딧불 구경하기가 좀처럼 쉽지가 않다. 반딧불이를 보려면 체험할 수 있는 곳을 찾아가야 한다. 무주 반딧불이 축제가 있다. 친환경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반딧불이가 점차 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친환경 농법의 발달과 함께 자연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는 무주에서는 어렵지 않게 반딧불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어릴 적 한여름밤을 수놓았던 반딧불이를 무주뿐 아니라 이곳도 가까이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도록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음 하는 바람이다.

어른들이 도깨비불이라며 겁을 주기도 한 반딧불이가 사방에서 뻔쩍거렸던 그 시절 여름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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