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가 화장하는 이유
그 여자가 화장하는 이유
  • 안희자 <수필가>
  • 승인 2014.07.08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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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안희자 <수필가>

거울을 들여다본다. 눈가의 주름이 깊다. 피부는 바람 빠진 고무풍선처럼 탄력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예전의 고왔던 얼굴은 어디로 갔을까. 마음이 급해진다. 화장을 해야 할까보다.

이십 대는 화장을 하지 않아도 생기발랄하고, 삼사십 대는 한 듯 안한 듯이 옅은 화장이 멋이라 하며 오십 대가 넘어서면 갈수록 화장이 짙어진다고 한다.

나도 매일 화장을 한다. 얼굴에 자신이 없어서이기도 하고, 예쁘게 보이려는 마음 때문이기도 하다.

한때 그 일이 직업이 된 적이 있다. 공기업에 다니던 남편이 병마로 인해 돌연 퇴직했을 때 나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화장품 가게를 열었다. 그러다 보니 끼니는 걸러도 화장만큼은 빠뜨릴 수 없었다. 출근하자 우선 파운데이션으로 잡티를 감추고 이어 색조화장에 들어간다. 여자의 계절은 컬러라 했던가. 한때는 배우 김혜수 눈화장이 유행이었는데 상당한 인기몰이를 했다. 나도 그녀처럼 푸른색으로 눈화장을 했다. 당시 여성들은 김혜수 신드롬에 빠졌으니 상품은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그때 거리마다 여자들의 눈두덩은 푸른 물결을 이뤘으니 유행에 민감한 여자의 욕망을 누가 막을 수 있으랴.

유독 새빨간 립스틱에 집착하던 여인이 생각난다. 그녀를 볼 때마다 유난히 짙은 색조화장이 눈에 거슬렸다. 그녀는 남편의 외도로 인해 사랑받기 위하여 화장했단다. 나는 그녀에게 어울리는, 청순미가 풍기는 젊은 감각의 화장법을 권유했다.

그뿐인가. 미를 추구하는 욕구는 신분과 나이를 구분하지 않는다. 언젠가 단골손님인 70대 할머니는 영감한테 돋보이고 싶다며 예뻐지는 화장품을 골라달라고 해 웃음바다가 된 적이 있다. 젊은이나 노인이나 생이 끝나는 날까지 화장품의 유혹에서 벗어날 순 없으리라. 하물며 생을 마감하면서도 빼놓을 수 없는 장례의식 중 하나가 망자(亡者)를 위해 화장(化粧)하는 일 아니던가.

내 경험에 의하면 젊은이들은 자신의 얼굴을 한껏 드러내려 하고, 노인들은 자신의 늙은 모습을 애써 감추려한다. 여자가 가장 예쁠 때는 그 나이에 어울리는 화장을 했을 때인 듯하다. 젊은이들은 립스틱만 살짝 발라도 생기가 넘치는데 노년의 얼굴은 화장으로도 감출 수 없다.

그도 그런 것이 요즘 외출할 때면 아무리 파운데이션을 덧바르고 뽀얗게 가루분을 두드려 봐도 매양 칙칙할 뿐, 주름은 더 도드라져 보인다. 화려하지 않으면 어떠랴. 주름이 있으면 또 어떤가. 연륜이 묻어나는 자연스러운 화장이 매력이지 않은가.

이제 나는 알고 있다. 여자의 화장은 자기 자신을 위로하여 주는 것이며 젊음을 되찾고 싶은 여자의 본능이란 것을.

내가 가게를 정리하던 그날도 나는 화장을 했다. 화장이 나에겐 삶이고 희망이었다. 밥벌이의 도구이기도 했다. 돌아보니 걱정과 눈물마를 사이 없는 고단한 삶이었는데 화장을 한 얼굴에선 고통이 감추어졌던 것일까. 지인들은 내게 그렇게 힘든 역경이 있으리라는 상상을 하지 못했다 한다.

거울을 들여다본다. 전에는 남에게 예쁘게 보이려고 화장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한다. 깊은 주름을 감추기보다는 생긴 그대로의 얼굴에 충실하고 싶다. 나는 오늘도 주홍빛 립스틱을 힘주어 바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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