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하루
어떤 하루
  • 김희숙 <수필가·산남유치원교사>
  • 승인 2014.07.0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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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희숙 <수필가·산남유치원교사>

햇살이 눈꺼풀 위로 내려앉아 혼곤한 내 머리를 흔든다. 살며시 눈을 여니 어느덧 아침은 방안에 가득 들어와 춤을 추고 있다. 번잡한 도시를 떠나 자연 속으로 스리슬쩍 스며들고 싶은 일요일 아침이다. 친구와 함께 물통 하나씩을 들고 길을 나선다. 상당산성을 통과하니 어느새 도시는 오간 데 없고 시골의 풍경이 해사하게 웃고 있다. 미원을 지나 청천으로 난 길 속으로 흥겹게 질주한다. 월문리 다리 옆에 있는 약수터에 도착하여 물통을 들고 내렸다. 예전의 빨래터 같은 느낌이 물씬 풍기는 약수터다. 그곳에는 몇몇 사람들이 통에 물을 받으며 근방의 소식을 나르고 있다.  

한 여자, 남편과 화양동 펜션을 한단다. 이곳의 물이 하도 좋아서 늘상 떠 나른단다. 옻 오른 데도 좋고 아토피에도 좋단다. 다른 한 여자, 올해는 너무 가물어서 약수도 많이 나오지 않는다며 투덜댄다. 이곳의 물을 수십 년 째 먹는단다. 이곳의 물은 잡내가 없고 달달하며 보름을 떠다 두어도 이끼가 끼지 않는단다. 또 다른 한 여자, 인천에서 살다 자연을 찾아 내려왔단다. 계곡의 물을 끌어와 수영장을 만든 집에서 산다며 언제고 놀러 오라 한다. 그녀의 말을 골똘히 듣고 있던 친구가 그녀에게 번지수를 알려 달라고 한다. 친구는 농약이 들어 있는 채소를 먹지 않으려고, 텃밭을 임대하여 손수 채소를 가꾸어 먹는다. 친구는 시골에 들어와 자연과 하나 되어 소박하게 사는 게 꿈이다. 나 또한 전원주택에 관심이 많은 터였다. 산골에 조그만 다락방 하나 딸린 집에 살면서, 하룻밤은 달을 들이고, 또 하룻밤은 별을 들이고, 그리고 하룻밤은 바람을 들이고, 하룻밤은 온통 새까만 어둠을 들이고, 남은 밤이 있으면 타닥이는 빗소리를 방안 가득 들여 그것들과 교감하면서 사는 것이 내 소망이다. 그래서 의기투합한 친구와 나는 시골에 땅을 마련하여 나란히 집을 짓고 같이 살기로 했었다. 오늘 우리의 꿈을 이루며 사는 인천에서 온 그녀를 약수터에서 우연히 만난 것이다. 친구와 나는 대뜸 약수터에서 처음 만난 그녀의 집으로 가기로 한다. 물통에 물을 가득 채우고 차에 올라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찍는다.

좀전에 약수터에서 만났던 그녀가 대문 앞에 나와 반겨준다. 마당엔 잔디가 가득 펼쳐져 있고 바람도 한가로이 햇살을 따라가며 넘실거리고 있다. 그녀의 말대로 수영장이 마당 한켠에 자리하고 있다. 너무나 솔직한 내 친구 “수영장이 생각보다 작네요.”라고 일침을 가한다. 그녀는 짐짓 못 들은 척한다. 나는 그녀가 무안할까 봐 얼른 친구의 말을 막으며 “계곡물이라 시원하겠어요. 잔디가 너무 예쁘네요.”한다. 그녀가 집안을 구경시켜준단다. 알래스카에서 가져온 팔백 년 된 통나무로 기둥을 세웠다며 자랑스러워하는 그녀에게 솔직한 내 친구 “집이 좀 어둡네요.” 난 친구의 말을 얼른 가로채 “나무로 지어서 그런지 집이 참 시원해요.”라고 말한다. 그녀는 넉넉한 웃음으로 화답한다. 또 하우스 곳곳을 돌아보며 유기농 채소 가꾸는 법을 설명해 준다. 돌아가려는 우리를 불러 앉혀 고추와 상추 피망 부로컬리를 재료로 한 자연 밥상을 차려준다. 꾸밈없는 밥상과 푸르른 자연을 만끽한 하루다.

처음 보는 사람과 처음 보는 밥상을 마주하고, 처음 보는 산과 나무에 대해 이야기하며 처음이라도 이렇게 낯설지 않을 수 있는 건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안도감과 친화력 때문인 듯하다. 자연으로 빨리 들어가서 자연에 갇혀 살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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