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 몫' 찾겠다 정치 첫발 … 축산농서 3선 군수 변모
'농민 몫' 찾겠다 정치 첫발 … 축산농서 3선 군수 변모
  • 이형모 기자
  • 승인 2014.07.0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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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훈 진천군수

△ 유년시절
마을이장 선친 보며 리더의 꿈
중학교 졸업후 축산업 시작

△ 23년 정치인생
농민단체 리더 등 거쳐 도의원
민선 2·3기 군수 도전서 고배
4기 당선 … 첫 '3선 군수' 명예
△ 민선 6기 목표

군민, 군정 관심·참여 과제로
'문화·교육도시 진천' 만들 것


유영훈 진천군수가 힘들 것이라는 예산을 깨고 3선 고지를 밟았다. 주위의 우려속에서도 뚝심있게 밀어 붙인 결과다. 민선 4·5기 군정을 이끌면서 진천시 건설의 초석을 다졌다는 평가를 군민들로부터 받은 셈이다. 유 군수는 민선 6기 군정 목표로 '교육·문화도시 진천건설'을 내세웠다.

◇ 유년기

유 군수의 선친은 1968년에 마을 이장직을 맡았다. 당시 마을에 이장이 유고 상태였고 채무문제 때문에 마을에 위기가 닥친 상황이었다. 농사일과 다른 일을 하던 선친은 이장을 맡을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면의원 경험이 있어 주위의 권유를 뿌리치지 못하고 결국 이장을 맡게 됐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이장직을 맡아 마을의 힘든 일을 잘 수습했고 이를 옆에서 지켜본 유 군수는 선친에게 감명을 받아 리더의 꿈을 키웠다.

당시 넉넉치 않은 가정형편에 5남매 둘째로 태어난 유 군수는 형이 고등학교에 다니게 되면서 선친으로부터 농고 진학을 권유 받았지만 이를 뿌리쳤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 마냥 놀수가 없어 군부대가 목장을 하다 철수한 곳에서 축산을 하기로 결심하고 37사단장에게 편지 한통을 썼다. 목장으로 키우겠다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목장을 임대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한우 1마리로 시작한 축산이 24마리까지 늘어 재미가 있을 무렵 군에 입대했다. 제대한 뒤에도 축산을 계속하던 그는 가난에서 벗어날 방법을 고민했다.

그러던 중 평소 관심이 있던 4-H 학습단체 회원으로 가입하면서 공동체 운영과 다른 사람과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 이후 마을 회장, 면·군 회장을 거치면서 농민단체 리더로 성장했다.

◇ ‘농민의 몫’ 찾아 정치에 도전

지방자치단체가 출범하면서 농민 출신으로 정치에 참여해 농민의 몫을 찾아보겠다는 결심도 이때 하게 된다. 주변의 강한 권유도 뿌리치지 못했다. 결국 정치인으로 첫 발을 대딛게 된 동기가 됐다.

1991년 첫 선거에서 도의원으로 출마를 결심한 그는 아이들 교육을 위해 진천읍에 사뒀던 집을 팔아 선거자금으로 썼다. 처음 출마한 선거에서 무난히 당선도 됐다. 인간적인 친분이 당선에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재선된 뒤에는 주민의 애·경사가 고민거리였다. 축·부의금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선에 도전하면서는 축·부의금을 하지 않고 ‘유영훈’이름 석자만 내걸고 선거를 했다. 당선이라는 만족할 결과도 얻고 재선 의원으로 도의회 부의장직을 맡아 의회를 이끌어가는 리더 역활을 체험하게 됐다. 무엇보다 갚진 것은 행정을 이해하는 계기가 됐던 것이다.

그렇지만 도의원 생활에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고생한 만큼 의정활동으로 성과를 내기가 어려웠고 활동이 제한적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래서 군수에 도전해보자는 꿈을 갖게 된 뒤 민선 2기가 출범하던 1997년 진천군수 선거에 도전했으나 낙방의 고배를 마셨다. 4년 뒤 도전한 민선 3기 군수 선거에서도 떨어지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고 진천 푸드뱅크 회장을 맡아 소외된 주민을 위해 봉사를 시작했다. 그늘지고 소외된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게 된 것이 바로 이 시기다. 그래서 어려운 사람을 도와 함께 잘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군수가 되겠다는 생각도 굳히게 됐다.

2006년 민선 4기 군수선거에서 3선에 도전하는 김경회 전 군수의 높은 벽을 마침내 허물었다. 쉽지 않은 선거였지만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열심하겠다는 자세가 밑거름이 됐다. 이어 민선 5·6기 군수에 당선되면서 진천 최초의 3선 군수라는 명예까지 얻게 됐다.

◇ 굴곡많은 23년 정치인생

1991년 첫 선거에 나서 올해로 정치인생 23년이 됐다. 15년은 기쁨을, 8년은 낙선의 아픔을 맛보기도 했다. 성공의 영광보다 낙선의 아픔이 더 컸다. 하지만 낙선에 좌절하지 않고 아픔을 스스로 잘 이겨낸 것이 정치인생의 큰 교훈이 됐다.

그래서 민선 4·5기 군정에서 큰 사업을 해내겠다는 욕심이 앞서기도 했다. 그러면서 주변을 챙기고 군민의 가려운 곳을 긁어 주겠다는 초심이 잠시 흔들리기도 했다.

이런 스스로의 평가 때문에 민선 6기의 과제로 군민이 군정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사회를 반드시 만들어 보자는 것을 과제로 삼았다. 군민의 화합속에 개인 이기주의를 뛰어 넘어 문화와 교육도시 진천을 반드시 만들겠다는 것이 그의 목표다.

◈ "백년대계 기초 탄탄히 다지겠다"

유영훈 군수에 듣는다

공약 빠짐없이 추진 … 뷰티 산단 육성 구상
문화·교육에 산업 접목 고차원적 도시 건설


- 취임 소감은.

△ 진천을 중부권 최고의 자치단체로 만들라는 군민의 기대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새로운 4년을 맡겨 준 군민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 청렴과 정직으로 최선을 다하겠다.

8년 전 군수를 시작하면서 꿈꿨던 진천시 승격을 위해 그동안 대단위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우석대를 유치해 교육여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아울러 충북체육고 이전, 진천선수촌 건립, 근로복지공단 인재개발원 및 신한은행 연수원 건립, 한국교육과정 평가원, 한국교육개발원 이전 등의 성과도 일궈냈다.

- 민선 6기 군정 운영 방향은.

△ 앞으로 4년은 진천 백년대계의 기초를 탄탄히 다지는 시기로 만들겠다. 군민 모두가 한마음으로 한 발짝만 더 떼면 우리가 목표한 진천시가 다가올 것이다.

선거 기간에 약속한 공약은 하나도 빠짐없이 추진할 것이다. 지난해 충북 최초로 지정된 국제교육문화 특구 사업을 통해 글로벌 인재를 배출하는 교육 강군 진천을 만들기 위해 힘을 쏟아 나가겠다.

지난 3월 서원대학교와 체결한 진천바이오 기술지원센터 설립을 위한 공동 협약을 향후 서원대 진천캠퍼스 조성의 기반이 될 것인 만큼 행·재정적 지원도 아끼지 않을 계획이다.

아울러 영·유아부터 노인까지 평생 복를 앞당기고 사회적 약자, 소외계층을 배려하는 행복한 진천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그러기 위해 국제 뷰티 전문산업단지 조성, 산업단지 우량기업 유치, 진천전통시장 시설 현대화, 자동차 연비 센터 건립 등을 통해 주민이 모두 잘사는 진천을 건설하겠다.

친환경·특화작목 육성을 통한 부농 진천, 자연과 호흡하는 청정 진천을 이루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 구상하고 있는 신규사업은.

△ 경제적인 측면으로 볼때 진천은 수도권에 인접해 그동안 수혜를 봤기 때문에 기업체가 많이 들어왔다. 반면 개별입지가 문제가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산업단지로 기업체를 유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향후 진천을 먹여살릴 신성장동력 사업으로 뷰티전문 산업단지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이때문이다. 그렇지만 이것만으로는 사회구조상 만족할 수 없다고 판단해 교육과 문화를 접목해 다양한 사업을 펼쳐나갈 생각이다.

- 진천군의 청사진이 있다면.

△ 지금까지는 경제성장을 위한 산업위주로 갔다면 앞으로는 문화와 교육에 산업을 접목시켜 고차원적인 도시로 만들것이다. 국내 지자체중 문화와 교육을 접목한 도시는 없는 것으로 안다.

앞으로 혁신도시가 완성되고 주로 교육기관이 입주하면 진천은 다른 지자체와 차별화된 지역으로 탈바꿈할 것이다. 이런 도시가 된다면 색깔이 다른 도시로 특화될 것이다.

- 군민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 이번 선거를 통해 지방자치는 군민적인 공감대를 공유할 수 있는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진천도 이제 지방자치의 병폐로 지적되는 개인 이기주의를 벗어 버릴 수 있는 시기가 됐다. 문화와 교육의 생거진천시 건설을 위한 군정에 많은 군민들이 참여해 주기를 바란다.

- 4년 뒤 진천의 미래상은.

△ 민선 6기는 도시의 기본 인프라를 갖추는 시기가 될 것이다. 그래서 임기동안 교육과 문화가 접목된 도시의 골격을 갖춰나가겠다.

여기에 우석대 타운이 마무리되고 서원대 제2캠퍼스 조성, 대경대 국제학교 등이 들어오면 학생들이 지역 곳곳을 누비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국제문화교육특구가 면모를 갖춰나가면 특화된 도시의 모습을 4년 뒤에는 반드시 보게 될 것으로 기대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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