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더?
어? 더?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4.07.02 19: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어, 더?’ 다름이 아니라 부정관사 ‘a’와 정관사 ‘the’의 용법에 관한 이야기다. 사실 어려서도 부정(不定)이 무슨 뜻인지, 정(定)이 무슨 뜻인지 모르고 이 말을 썼다. 관사(冠詞)야 관처럼 따라 붙는 것이라는 뜻이 쉽게 왔지만, 정이나 부정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잘 이해가지 않았다.

‘a’는 흔히 하나를 말하는 것이라서 하나가 구체적인 개별물로 떠올랐다. ‘나는 학생이다’고 할 때 ‘a boy’는 학생이 복수가 아니라 단수이기에 나에게는 실재하는 어떤 하나의 사물로 생각된 것이다. 그리고 ‘the’는 ‘a’와 반대이니 추상적인 것으로 보였고. 이게 내 중학교 이후의 영어실력였다. 문법을 아는 사람은 금새 나의 영어실력을 알아차릴 것이다. 참, 그러고도 학교를 졸업했어?

나의 머리속에는 복수와 단수라는 개념이 관사라는 개념보다 앞섰던 것 같다. 그러니 단수는 구체적이고 실재적이어야 했다. 대신 복수는 여럿이고, 지구상의 모든 사람을 일컬을 수는 없는 것이니만큼 추상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거기에 ‘the’라는 말로 형용사도 추상화시키니, ‘아, 정관사는 추상이구나’라고 믿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beautiful’에 ‘the’를 붙이면 아름다운 것, 아름다움 사람이 되지 않는가. 형용사를 명사로 만들 정도로 힘센 ‘the’는 분명히 추상적이고 절대적인 것이라고 나는 믿었다. 게다가, 절대라는 말에 ‘the’까지 붙이면 ‘절대자’(The absolute) 곧 신을 뜻하기도 했으니, 나에게 ‘the’는 하늘나라의 일이었다.

그러나 정답은 그 반대였다. 구체적인 개물에는 ‘the’를 붙이고, 특정한 존재물이 아닌 일반 존재에게 ‘a’를 붙였다. 위의 예로 말하자면 ‘I am a boy.’의 ‘a’는 너는 유일무이한 학생이 아니라 그저 학생 가운데 하나라는 뜻이었다. ‘I am a teacher.’는 나는 선생이기는 한데, 여러 선생 가운데 하나라는 말이다. 그리고 ‘the’는 ‘그’라고 번역되는 것처럼 ‘바로 그 놈’임을 가리킨다. ‘나는 학생에게 거짓말을 일삼는 그 선생’이라고 할 때 ‘the’를 붙인다.

부정관사의 부정이란 특정되지 않은 ‘여럿’(a)이라는 뜻에서 부정이고, 정관사의 정이란 이미 ‘하나로’(the) 정해졌다는 뜻에서 정이다. 그런데 우리말에 없는 이런 말을 쓰기는 정말 어렵다. 나의 일화다.

미국서 발표할 문장에 ‘a’, ‘the’가 신경 쓰여 원어민에게 보이기로 하고, 학교근처 커피숍에서 글을 보이고 있었다. 한 동안 혼자서 열심히 보길래 잠시 나와 거닐었는데, 한 교수님을 만났다. 뭐 하냐길래, 나의 고질병인 ‘a’, ‘the’를 보이고 있다고 했더니, 하시는 말씀이 걸작이다.

“저도요, 미국에서 학위논문을 쓸 때 문장 때문에 고생 많이 했습니다. 지도교수가 ‘a’, ‘the’를 시커멓게 고쳐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요, 다른 교수가 그렇게 고쳐놓은 문장의 ‘a’, ‘the’를 또 다시 시커멓게 고쳐주었습니다. 그 둘이 모두 미국사람인데 그들도 ‘a’, ‘the’ 용법이 또한 다른 겁니다. 그러니 그냥 아무렇게나 쓰세요”

참으로 다행스러운 위로였다. 흔히 ‘a’, ‘the’는 원어민 아니면 모른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도 잘 설명하지 못한다. 문법이야 우리가 그들보다 난 것도 사실 아닌가? 그런데 그들이 어색하면 어색한 거다. 그러나 그들도 수준 차이가 있어서 상호간의 격차를 보인다.

미국에서 교수하는 한국 사람도 마찬가지다. 강의는 해도, 논문에서 ‘a’, ‘the’는 구별이 안 되어 옆방 교수에게 보인단다. 영어 못하는 것, 죄는 아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