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다
꽃이 피다
  • 박명애 <수필가>
  • 승인 2014.07.0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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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박명애 <수필가>

선인장 꽃이 폈다. 눈처럼 맑고 희다. 꽃에서 풍기는 청량함이 푸른 새벽 공기와 닮았다. 새벽 서너 시쯤 피었다 햇볕이 강해지면 가만히 꽃잎을 접는다. 그렇게 일 년에 단 하루 머물다 떠나는 나의 손님은 청상의 여인 같은 처연함과 푸른 서슬을 동시에 지녔다. 견우와 직녀를 닮은 만남에 어쩌지 못하는 나는 혼자만 보는 꽃인 양 여기저기 수다를 떤다.

뭐 대수로운 일이라고 수선이냐는 핀잔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가슴 졸이며 함께 시간을 보내온 내겐 제 몸뚱이보다 더 큰 꽃을 피우는 조막만 한 선인장이 위대하기만 하다. 한겨울 영하 십도 이하로 기온이 뚝 떨어진 날은 슬그머니 베란다로 난 거실문을 평소보다 조금 더 열어주면서도 혼자만 따신 방에서 호사하는 듯 식물들에게 미안해 마음 불편한 날들이 있다. 그래도 뜨거운 햇볕과 찬 겨울 속을 견뎌야 꽃이 핀다는 말에 안타까움을 누르고 지켜 보아온 시간들이 있기에 꽃이 필 때마다 바라보는 기쁨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생명을 가진 것들이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디는 모습을 바라보기란 인내를 필요로 한다. 가시에 찔리듯 따끔따끔하고, 무거운 돌에 짓눌리는 듯 숨 막히고, 때론 가슴이 아리기도 하다. 자식일 때는 더욱 그러하다. 통과의례인 줄 알면서도 마음을 놓지 못한다.

이른 아침이면 베란다에 나가 하늘부터 쳐다본다. 하늘이 맑으면 뙤약볕 아래 고생할까 비 오면 옷이 젖을까 큰아이가 군에 간 이후로 마음 편한 날이 없는 듯하다. 흔들리는 마음을 다스리느라 속으로 용을 쓴다. 걱정가불이다. 말로만 편지로만 믿는다.

최근 터진 군대 총기 난사사건을 보며 아들을 군에 보낸 수많은 부모는 잠을 이루지 못했으리라. 한순간 동료에 의해 세상을 등진 젊은이들,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엄청난 일을 저지른 뒤 어찌해야 할 줄 몰라 산속을 헤매다 피의자가 되어 버린 젊은이도 모두 우리에겐 가슴 저린 가시다.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희생을 강요한 국가의 책임도 있지만 올바르게 자신을 지킬 줄 아는 힘이 있었더라면 서로에게 그리 상처 되는 일들은 하지 않았을 텐데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안타깝기만 하다.

잊을 만하면 일어나는 젊은이들의 사건. 이별을 견디지 못하고 싫은 말을 참지 못하고 갖고 싶은 욕망을 누르지 못해 터져 나오는 분노들은 기성세대가 짊어져야 할 사회문제지만 더불어 개인의 도덕성 문제이기도 하고 나약한 정신의 문제이기도 하다. 자신을 절제하는 힘, 고통을 견디는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땡볕과 찬바람 부는 시간을 지내고 나서야 비로소 꽃을 피우는 선인장처럼 흔들리는 사회에서 스스로를 지키고 견디는 힘을 길러야 건강해질 수 있다. 지켜보는 마음이 아리겠지만 부모 역시 그런 시간을 인내하고 기다려야 한다.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어떤 불편함을 감수하고 무엇을 양보하고 배려해야 하는지 경험하고 고통을 견디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하지만 잇따른 사건들 앞에서 내공이 깊지 못한 나는 출렁대면서도 흔들리지 않으려 이를 악문다.

햇볕이 따가워지기 시작했다. 이제 귀한 손님 선인장 꽃을 보내야 하는 시간이다. 섭섭해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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