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소망과 희망에 대하여
꿈과 소망과 희망에 대하여
  • 김기원 <시인·문화비평가>
  • 승인 2014.06.26 2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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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금요편지
김기원 <시인·문화비평가>

인간은 저마다 꿈과 소망과 희망이 있고, 그 꿈과 소망과 희망을 가질 천부인권이 있다.

인간에게 꿈과 소망과 희망은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다.

오아시스는 충전이다. 갈증을 풀어주는 시원한 물이자, 바닥난 기를 채워주는 에너지원인 것이다.

오아시스가 있어 사막을 건널 수 있듯, 꿈과 소망과 희망이 있어 고해와 같은 인생길을 헤쳐 나갈 수가 있는 것이다.

꿈의 사전적 의미는 잠자는 동안에 깨어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사물을 보고 듣는 정신 현상, 또는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 실현될 가능성이 아주 적거나 전혀 없는 헛된 기대나 생각이다.

유의어로 꿈결, 몽환, 미몽 등이 있다.

꿈꾸다 같은 긍정적인 말이 있는가 하면 꿈 깨다(희망을 낮추거나 버리다), 꿈도 못 꾸다(전혀 생각도 하지 못하다), 꿈도 안 꾸다(전혀 생각도 안 하다), 꿈도 야무지다(희망이 너무 커 실현 가능성이 없음을 비꼬아 이르는 말), 꿈에도 생각지 못하다(전혀 생각하지 못하다) 등 부정적인 말로도 쓰인다.

소망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을 바람, 또는 그 바라는 것이다.

유의어로 소기, 야망, 야심이 있다.

소망스레, 소망을 보다, 소망되다, 소망스럽다, 소망하다 등 주로 긍정적인 언어로 사용된다.

희망의 사전적 의미는 앞일에 대하여 어떤 기대를 가지고 바람, 또는 앞으로 잘될 수 있는 가능성이다.

유의어로 원, 포부, 희원이 있다.

희망차다 희망을 품다 희망을 안다 처럼 자신을 향한 말이 있고, 희망을 걸다 희망을 불어넣다 처럼 자식에게나 타인에게 쓰는 말이 있다.

이처럼 꿈과 소망과 희망이 비슷비슷한 말처럼 보이나 속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릴 적에는 누구나 꿈을 먹고 산다. 그러나 그 꿈이라는 게 막연하고 추상적이어서, 대통령, 장군, 선생님, 간호사 등으로 자라면서 수정되고 바뀌는 특징을 지닌다. 이루고자하는 구체성과 간절함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소망에는 구체적인 주제와 간절함이 깊게 배어있다. 그래서 대다수 사람들은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해 자신이 믿는 신에게 또는 절대자에게 가호를 청하기도 한다.

희망은 꿈과 소망의 중간지대로 보여 진다. 그러므로 꿈처럼 막연하지도 않고, 소망처럼 신의 가호를 빌만큼 그렇게 간절하지도 않은, 희망을 이루기 위해 행운이 따라주기를 바라는 정도이다. 그러므로 희망에는 행운이 필요하고, 희망을 이루면 희열을 느끼게 된다.

희망의 또 다른 특징은 나이가 들수록 자신이 희망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자식에게나 제3자에게 희망을 거는 데 있다. 대리만족하며 사는 것이다.

꿈과 소망과 희망이 없는 삶은 삶이 아니다. 식물인간처럼 생명연장만 있을 뿐.

그러므로 생명이 다할 때까지 꿈꾸고, 소망하고, 희망해야 한다.

꿈을 꾸되 인류와 국가와 지역에 이타가 되게, 소망하되 이 땅에 평화와 안전을, 희망하되 누군가에게 의미가 되는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이기적인 꿈과 소망과 희망은 또 다른 이기적인 꿈과 소망과 희망들과 충돌하여 파열음을 낼 수 있다. 일시적인 성취감과 희열을 느낄 수 있으나, 그로 인해 불행에 빠질 수도 있다.

또한 아무리 좋은 꿈과 희망과 소망일지라도 혼자 하면 이상으로 끝나고, 공동체가 함께 하면 현실이 된다. 경제도 사회도 문화도 과학도 그러하다.

지금 당신이 그리는 꿈과 희망과 소망에 뜻을 함께 하는 이가 많다면 당신은 정녕 행복한 사람이고, 내일이 있는 멋진 사람이다.

당신은 지금 무슨 꿈을 꾸고, 무엇을 소망하며, 어디에 희망을 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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