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날 낳으시고 선생님 날 만드시고
어머님 날 낳으시고 선생님 날 만드시고
  • 정명숙 <수필가>
  • 승인 2014.06.2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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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정명숙 <수필가>

삼백만 원을 받았단다. 그것도 여러 번 독촉한 후에 받은 것이라 했다. 남편한테 보너스를 받은 것도 아니고 자식에게 용돈으로 받은 것도 아니다. 늙으신 친정어머니에게서 강제적으로 받아낸 성형수술비용이란다. 웃음이 터졌다. 문우는 50대 중반을 막 넘어선 사람이다.

찻집에서 담소를 나누던 중이다. 평소에는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문우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눈 코 입이 뚜렷해서 무척 예쁘다. 도톰한 입술이 압권이다.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의 말머리를 무례하게 끊었다.

“입술이 뽀뽀하고 싶게 섹시합니다.” 문우는 박장대소한다.

“제 신체 중에 제일 스트레스가 입술입니다. 중학교 때 국어선생님을 복도에서 마주쳤는데 왜 가만히 있는 입술을 갖고 타박을 하시는지, 너무 두툼하다고 무안을 주시는 겁니다. 그때부터 입술 때문에 지금까지 기죽어 삽니다.”

세상사 고민을 다 끌어안은 사람처럼 생각이 많은 게 사춘기다. 예민하던 시절 받았던 상처는 평생을 간다. 그 후로 문우는 타인 앞에 설 때마다 입술을 가리고 싶은 충동이 일곤 했단다. 늦은 나이에 친정어머니께 성형수술비용을 받아 낸 것을 보면 입술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었던 것 같다. 같은 얼굴을 거리에서 마주칠 때마다 공포영화를 보는 것 같아 섬뜩하니 제발 성형하지 말라는 내 말에 용기가 없어 아직 못했다 한다.

나는 형제 중에 제일 못생겼다. 나만 왜 이렇게 낳아 놓으셨는지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초등학교시절부터 늘 친구들 앞에서 주눅이 들었던 것 같다. 나이 들어 옛 친구를 만나거나 한동안 격조했던 사람을 만났을 때 그들이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며 예전엔 참 예쁘더니 많이 달라졌다고 하면 그때서야 내가 정말 예뻤었나, 할 뿐이다.

허나 형제들과 마주하고 있으면 다시 추녀가 된 기분이다. 못생긴 건 부모님 책임이니 성형수술비 줘야 한다고 아버지를 졸라보나 큰딸이 제일 예쁘다는 이유로 끝내 성형 수술비를 주지 않는다. 당신 자식이 못생겼다고 인정하기 싫으신 모양이다. 솔직하게 인정할 건 인정하는 요즘 젊은 부모들과 달라도 한참 다르시다.

어느 결혼식장에서 젊은 사람들의 대화를 들었다. 신랑의 외모가 화재였다. 키가 작고 인물도 변변치 않은데 시집이 준재벌이란다. 2세가 아빠를 닮으면 곤란하지 않을까 하는 말에 받아치는 대답이 걸작이다. 키가 작으면 성장호르몬주사를 맞히면 될 것이고, 못생겼으면 성형수술해주면 된단다. 자식은 낳기만 하면 되고 제대로 만들어주는 건 성형외과 선생님 몫이라 한다.

예뻐지려는 것은 여자의 본능이다.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기도 한다. 여성의 강점과 같은 감성적 능력에 부드러움, 게다가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전설로 남아있는 서시의 인물이 더해진다면 백전백승이다. 성형외과 선생님께 얼굴을 다시 만들어 달라는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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