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의 추억
오디의 추억
  • 양철기 <충북학생외국어교육원 연구사·박사·교육심
  • 승인 2014.06.23 2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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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강희진 <수필가>

며칠 전 장에 가서 오디를 사왔다. 시커먼 알맹이를 입에 넣는 순간 오디 특유의 향이 오랜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이때쯤 되면 뽕나무에 올라가서 오디를 따먹고 입이 까매져서 돌아오고는 했다. 구태여 장에 가지 않아도 흔하게 먹을 수 있었던 것이 오디였다.

어릴 적 우리 동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에를 길렀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어서 봄부터 여름까지 누에를 키웠다. 누에가 먹을 양식이 바로 뽕잎이었고 잎을 따내다 보니 오디 알은 더욱 실하게 굵어서 더 맛있었다. 지금처럼 오디를 채취할 목적이 아닌 누에를 키우기 위한 것이기에 지천에 널려 있었다는 의미다. 우리는 오디를 따먹고 누에는 잎을 갉아 먹으면서 함께 자랐다고나 할까.

그런데 정말 싫었던 것은 누에와 한 방에서 자야 하는 것이었다. 누에가 애벌레 때는 괜찮았지만 한잠씩 자고 일어나 커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징그러웠다. 깨알처럼 바글바글 모여 있을 때는 신기해서 들여다보기까지 했는데 3번쯤 자고 일어나면 너무 커서 피해 다녀야 했다. 그래서 옛 속담에 쑥쑥 커가는 것을 볼 때 ‘잠 자고 일어난 누에 같다’고 했나 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채반에서 누에가 떨어져 내 곁으로 기어 다녔다. 그러면 나는 눈을 감고 있는 대로 소리를 질렀고 뒤미처 엄마가 와서 나를 안고 나가고는 했다.

한 달여 시간동안 4번의 잠을 자고 난 누에가 누에고치가 되면 할머니가 물레에 고치실을 걸어 뽑았다. 그것을 볼 때마다 누에고치 하나에서 어떻게 그토록 많은 실이 나오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한 개의 고치에서 대략 1500m에서 1700m의 실이 나온다고 한다. 그것으로 비단을 만들었고 그 오랜 시간과 노력의 공정을 거쳐 만든 옷이기에 특별히 명주라 해서 귀하게 입는 옷의 재료가 되었던 것이다.

미인의 조건을 말할 때 눈썹은 아미 같다고 한다. 게다가 아미는 곧 누에나방의 눈썹이었다는 것을 배우며 그 징그럽던 번데기에서 나온 나방의 눈썹이 그리 예뻤는지 의아한 생각이 들고는 했다. 실을 뽑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고치가 만들어지면 그것을 팔거나 실을 뽑았기 때문에 나방을 자세히 볼 기회는 흔치 않았다.

최근 뽕나무에서 나온 모든 것이 성인병의 예방으로 특히 당뇨와 동맥경화, 고혈압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뽕잎은 식물임에도 불구하고 단백질의 비중이 높고 칼슘과 철분이 많이 들어 있다. 식이섬유 또한 풍부하다고 한다.그래서 나물에서부터 차, 장아찌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각광받는 음식이 되었다. 그런 뽕잎만을 먹고 자라서인지 누에도 단백질이 풍부해서 누에가루를 약용으로 쓴다. 요즘은 약용으로 쓰기 위해 누에가 길러지기도 한다. 거기에 열매인 오디에도 황산화물질과 철분, 비타민B, 칼슘이 많다고 하니 뽕나무는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는 듯하다.

문득 신기한 듯 지켜보고 있는 나에게 누에고치에서 실이 풀려 나오듯 모든 일이 잘 풀려 나가라고 흥얼거리시던 할머니가 생각났다. 어른이 되었지만 세상일이 그리 그렇게 술술 풀리기만 하던가? 아직 할머니 나이만치는 살지 않았어도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 게 세상이라 아무것도 모르는 내게 그런 말씀을 탄식처럼 되뇌셨나 보다.

오디를 소분하여 냉장고에 보관했다. 그새 손이고 옷이고 까맣게 물들었다. 살면서 묻은 얼룩처럼 친근해진다. 올 한 해는 오디를 꺼내 먹을 때마다 특별히 고향생각과 이미 내 곁을 떠나 세상에 없는 할머니와 어머니의 체취가 더 간절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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