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의 감흥
여름밤의 감흥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4.06.23 18: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무더운 여름철이 되면 사람들이 제일 무서워하고 싫어하는 것이 땡볕일 것이다. 그래서 땡볕을 가려주는 그늘을 찾아 들어가고, 땡볕이 아예 없는 밤을 기다리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여름밤은 사람들에게 반갑고 매력적인 존재이지만, 낮 시간이 길어진 만큼, 시간이 짧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아무리 농익은 녹음(綠陰)일지라도 무더위에 지친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다. 몸과 마음이 편해야 풍광을 즐길 여유가 생길 것 아닌가 그래서 여름은 밤의 풍광이 사람들에게 특별한 운치로 다가오곤 하는 것이리라. 당(唐)의 시인 맹호연(孟浩然)에게도 여름은 밤이 좋은 계절이었다.



◈ 어느 여름 남정에서 신재를 생각하며(夏日南亭懷辛大)

山光忽西落(산광홀서낙), : 산의 해 홀연히 지고

池月漸東上(지월점동상). : 못의 달 점차 동으로 오른다

散髮乘夜涼(산발승야량), : 머리 풀어헤치니 밤 바람 불어 서늘하고

開軒臥閑敞(개헌와한창). : 난간 문을 열어 한가한 방에 누우니 앞이 탁 트였구나

荷風送香氣(하풍송향기), : 연꽃에 이는 바람, 불어오는 꽃향기

竹露滴淸響(죽노적청향). : 대나무에 듣는 이슬, 들려오는 맑은 소리

欲取鳴琴彈(욕취명금탄), : 금을 타고 싶으나

恨無知音賞(한무지음상). : 알아줄 친구 없어 한스럽네

感此懷故人(감차회고인), : 느꺼워 친구가 생각나지만

中宵勞夢想(중소노몽상). : 한밤 꿈길에서도 만나기 힘들구나

 

※ 길기만 한 여름 해도 사라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산에 걸려있던 해가 홀연 사라졌다. 서쪽으로 떨어진 것이다. 대신 동쪽 연못 위로 달이 서서히 솟아 올랐다. 여름밤 향연의 서막은 이렇게 극적으로 올랐다. 이제는 배우가 등장할 차례이다. 시인은 낮 동안 묶고 있었던 머리부터 풀어 제쳤다. 그리고서 밤바람을 맞으니 확실히 시원한 느낌이 든다. 여기에 낮 동안 닫아 놓았던 난간 문을 열어 제치고 텅 빈 방에 한가롭게 누워 있노라니, 앞이 탁 트인 느낌이 든다. 밤이 가져다 준 시원함에, 닫혀 있던 난간 문과 함께, 시인의 마음도 열린 것이리라.

마음의 여유가 생기자, 비로소 여름밤의 풍광이 제대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조금 전 달이 뜨는 무대 역할을 했던 연못에 가득 핀 연꽃의 향기가 바람에 실려 와 코끝을 스치었고, 연못 가 대나무 숲에서는 이슬 떨어지는 소리가 청아하게 들려왔다.

그윽한 데다 고요하고 청아하기까지 한, 여름밤의 풍광을 시인은 예민한 감수성으로 포착해 내고 있다. 매력적인 여름밤의 풍광에 감흥이 일자, 시인은 문득 금(琴)이 타고 싶어졌지만, 이내 금을 내려놓고 만다. 들어 줄 친구가 없음을 깨닫고 마음이 아팠기 때문이다. 이에 마음이 울컥해진 시인은 친구가 그립지만, 막상 오밤중 꿈속에서 조차도 나타나지 않으니 안타깝기만 할 뿐이다.

무더운 여름을 마냥 피할 수만은 없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은 여기서도 예외가 아니다. 여름의 땡볕이 부담스럽다면, 여름밤을 즐기면 된다. 연못 위로 달 뜨거든, 연꽃의 향기를 맡고, 대나무에 떨어지는 이슬 소리를 들어보라. 그리고 그리운 친구를 떠올려 보라. 이만하면 여름의 운치도 충분한 것이 아닐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