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 책 속에 오묘한 이치 있으니(11)- 행복은 생각하기 나름
직지 책 속에 오묘한 이치 있으니(11)- 행복은 생각하기 나름
  • 박숙희 <청주시문화관광해설사·아동문학가>
  • 승인 2014.06.22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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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해설사에게 듣는 역사이야기
박숙희 <청주시문화관광해설사·아동문학가>
‘직지’ 책 속에 오묘한 이치 있으니, 열한 번째 이야기는 ‘직지’ 하권 16장에 나오는 혜구 선사(惠球禪師)의 말이다. 전문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부산 화엄사 주지 각성 스님의 ‘직지’ 번역 및 강해(1998년) 등을 참조했음을 밝힌다.

혜구 선사가 대중에게 보여 말씀하셨다. 내가 여기에서 죽과 밥의 기력을 가지고 여러분들을 위하여 법을 말하는 것은 마침내 이 항상한 것이 아니다. 만약 생요(省要)를 얻게 되면 문득 이 산하대지가 그대와 더불어 발명하기 때문에 그 도가 이 항상한 것이다. 만약 문수문으로부터 도에 들어간 자는 흙, 나무, 기왓장, 자갈이 네가 발기함을 도와준다. 관음문으로부터 도에 들어간 자는 일체 선약의 음성, 메아리, 개구리, 지렁이가 너를 위하여 거양(擧揚)한다. 만약에 보현문으로부터 들어간 자는 걸음을 움직이지 아니하고 도달할 것이다.

혜구 선사 자신이 위 세 가지 문(門)의 방편으로써 대중에게 보이는 것은 한 짝의 부러진 젓가락을 가지고 큰 바닷물을 저어서 저 고기와 용으로 하여금 바닷물이 바로 생명됨을 알게 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 만약에 지혜로운 눈으로 자세하게 살피는 것이 없으면 마음대로 백가지 선교방편을 펼지라도 구경이 되지 못한다고 한다.

죽반의 기력이라는 것은 사람이 죽을 먹거나 밥을 먹어야 기운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 결국 뱃심을 가리키는 것이다.

생요(省要)란 법문을 거창(擧唱)하는데 어떤 핵심을 알게 되는 것이니 가장 긴요한 것을 살펴서 알아차리는 것이다. 도를 공부하는 데는 생요를 얻는 것이 최고이다. 즉 생요를 얻으면 산하대지, 천지만물이 다 그대와 더불어 발명한 것이 된다는 것이다. 그 도리를 자세히 알려준다는 것을 발명(發明)이라고 한다. 도의 눈으로 보면 천지만물이 도 아닌 것이 없다. 그 도리를 발명해서 깨닫게 된다면 그 도의 자리야말로 영원히 항상한 것이다.

불법(佛法)가운데 문수보살이 있고 관세음보살이 있고 보현보살이 있는데 법을 상징적으로 표시하는 위대한 보살들이다. 혜구 선사는 그것을 부분적으로 나누어서 여러 가지로 설명을 한다. 문수는 대 지혜를 상징하고 보현은 행원(行願)을 대표하는 보살이다. 그러면서 혜구 선사는 이것은 똑같은 것이지 다를 것이 뭐가 있겠는가 한다.

위 혜구 선사의 말 중 문수문, 관음문, 보현문이 삼문이라는 것이다. 분류를 하자면 문수는 눈으로 보는 것과 같고, 보현은 발로 걸어서 행하는 것과 같고, 관음은 귀로 듣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관세음보살은 손으로 모든 것을 포착하기 때문에 손도 된다.

그 삼문으로 보이는 것이 부러진 젓가락 한 짝으로 바닷물을 뒤적거려서 바닷물이 소( ),락(酪), 제호(醍 )가 될 수가 있고 고기와 용들에게는 바닷물이 큰 생명이 되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는 지혜의 눈 없이 알려고 하는 것은 아무리 좋은 수단과 방법을 다한다고 해도 완전한 것이 못 된다는 것이다.

다산 정약용은 학문에 필요한 세 가지 핵심 덕목으로 혜(慧)·근(勤)·적(寂)을 꼽지 않았던가?

이는 지혜로 속도를 내고 근면으로 기초 체력을 다져도 침묵 속에 방향을 가다듬지 않으면 노력이 헛되고 슬기가 보람 없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즉 방향을 잃은 지혜, 목표를 놓친 노력은 뼈에 새겨지지 않고 오히려 독(毒)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구슬도 꿰어야 보배이듯 귀한 문화재도 그 사연을 알아야 우리의 문화재가 된다는 지혜, 근면, 침묵이 거듭 깨어나길 희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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