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 기질
시어머니 기질
  • 김용례 <수필가>
  • 승인 2014.06.19 20: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김용례 <수필가>

고부갈등, 내 사전에 이런 단어는 없을 거라고 자신했었다. 아들 결혼준비를 하면서 나 자신에게 크게 놀랐다. 나에게 시어머니기질이 이렇게 강하게 있는 줄 몰랐다. 삼십년 넘게 키워놨더니 엄마보다 제 아내 될 사람을 더 챙기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아들이 낮 설다. 아들과 며느리 될 아이가 예쁘면서도 조금은 서운한마음이 들었다. 한편으론 ‘그래 나는 서운해도 여자는 자기를 끔찍하게 아끼는 남자와 결혼을 해야 행복한 거야’ 라고 생각하면서, 표현은 안했지만 나도 모르게 질투가 났던건 아닌가 싶다. 웃지 못 할 일이지만 그랬다.

며칠 전 그날도 아들과 의견충돌로 식식거리는 나에게 남편이 고추나무 떡잎을 따 주어야한다며 같이 밭에 가잔다. 떡잎과 곁가지를 따주며 이 고추도 싹틔울 땐 떡잎이 중요하지만 어느 정도 자라면 떡잎을 빨리 따 주어야 줄기도 튼실해지고 고추가 잘 달린단다. 그러면서 나에게 아들도 빨리 놓으라는 것이다. 이제는 당신아들 아니라며 언제까지 끼고 있을 거냐고 다그친다. 30년 넘게 교직에 있던 남편은 엄마가 다 챙겨주는 애들은 대학을 졸업해도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한단다. 심지어 어느 엄마는 직장에서 아들 진급이 늦어지니까 사장을 찾아가 왜 자기아들 승진 안 시키느냐고 따지더라는 것이다. 부모가 빨리 독립해야 애가 잘 클 수 있다며 알아서 하게 놔두란다.

갈등은 소유욕에서 비롯된다. 내 존재감을 내세우기위해 억지를 부리는 것이다. 나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기적인 생각에서 비롯됨을 고추 떡잎을 따주면서 느꼈다. 아들의 사랑을 나누는 것이 서운한 일인가 보다. 대체 불가능한 사랑이라고 착각하고 살아온 내 견고한 생각이 잠시나마 아들을 힘들게 했나보다. 나는 고슴도치였다.

나는 시어머님과 함께 살면서 나도 며느리를 보면 어머님 같은 시어머니가 되리라 다짐 했었다. 어머니는 뭐든지 나부터 먼저 챙기셨다. 고부갈등이나 큰 불화가 없었다. 나는 내가 잘해서 관계가 좋은 거라고 생각했다. 어머님은 항상 “아범아, 뭐든지 에미 시키는 대로 해라”라고 하셨고 아들보다 매사를 며느리하고 상의를 하셨다. 어머님의 아들 사랑하시는 방법이었음을, 그 마음을 내가 시어미가 되려니 이해 할 것 같다.

떡잎처럼 떨어져야 하는 아픔을 겪어야 비로소 또 다른 세계의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다 키웠으니 독립 시켜야지 하면서 내 마음으로부터 독립을 시키지 못 했던 것이다. 아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맞이하는 복된 순간, 이 복된 순간을 내 속에 있던 시어머니 기질로 인해 상처를 낼 뻔 했다. 사람이나 식물이나 자신을 지킬 때가 되면 떡잎처럼 물러나 줘야 한다. 자연의 섭리가 하나도 어긋나지 않는다.

내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니 오로지 남편과 아이들만 바라보는 삶이었다. 안정과 고립의 시간이었다고 할까. 며느리를 얻으려하니 어디서 숨어 있던 시어미기질이 불쑥 튀어나온 것일까. 아들을 가진 엄마들의 유전자일까. 자식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는 멀리서 바라봐주는 존재로써 만족해야한다. 그래야 나도 즐겁고 아들 부부도 행복해 진다는 것을 고추나무에 떡잎을 따 주며 깨달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