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성 장애
기능성 장애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4.06.18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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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내가 좋아하는 의대 교수가 있다. 사람도 서글서글하고 농담도 잘한다. 알다시피 농담이 잘되려면 ‘자기는 웃지 않되 남을 웃겨야 한다’는 원칙에 충실해야 하는데, 그분이 그렇다. 처음 만났을 때 자신은 전혀 웃지 않기에 이분이 정말 농담을 하는 건지 아닌지, 좀 헷갈렸다. 나 같으면 내가 이미 웃으면서 시작하는데, 그분은 그런 점에서 코미디언 기질을 타고난 것 같았다. 술자리에서 몇 번을 보면서 농을 좋아하는 성격 좋은 분인 것을 비로소 알았다.

이제 그분이 웃지 않더라도 내가 먼저 웃는다. 아니, 나는 그분이 이미 농담을 시작한 것을 알아차린다. 그것은 일종의 웃음의 특수(特需)다. 코미디언을 보면 그가 가만히 있는데도 그냥 웃음이 나오는 것과 같다. 웃음 특수를 영어로 하면 ‘코믹 프리미엄’으로, 일종의 ‘덤’이다.

나도 그런 덤이 있는가를 묻는다. ‘웃음 덤’이라? 또는 ‘덤 웃음’이라? 재밌는 표현이다. 그러나 삶에도 덤이 있듯, 웃음에도 덤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내 삶의 덤이라면 나를 좋아해서 이곳저곳에서 불러주는 친구들이 우선이겠다. 술값도 잘 안 내는데도 불러주니 고맙다. ‘서생이 뭔 돈이 있어’란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런데도 나를 불러주는 것은 내가 지닌 ‘웃음 덤’ 때문인 것 같다. 일단 내가 가면 재밌단다. 그러고 보면, 나는 그 친구들 덕에 삶의 덤을 얻고, 거꾸로는 웃음 덤을 베푸는 꼴이다. 망가지면 어떠냐? 남들이 흥겨워하는데. 헛소리 좀 하면 어떠냐? 사람들이 웃는데.

아직까지는 사람들이 나를 보면 웃지만, 언제까지나 그리될지는 모르겠다. 행여 시간이 지나 사람들이 나를 보면서도 웃지 않고 얼굴이 굳어질까 두렵다. 그렇게 나이를 먹지는 말아야 할 텐데 말이다.

위에서 말한 의대교수의 웃음의 배경이 뭔가 궁금했는데, 결국은 알아냈다. 그분은 국내에서도 그렇고, 국외에서도 그렇고 많은 봉사활동을 다니고 있었다. 바쁘다는 의사가 그런 것까지 챙기는 것을 보고 나는 놀랐다. 그런 점에서 훌륭하다. 그런데 더 놀란 것은 그분이 의대 내에서 학생을 위해 농구단도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새벽부터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인데 그래도 학생과 어울리려고 이런 활동을 하는 것이었다. 봉사도 어렵지만, 놀기는 더 어렵다. 그런 점에서 또한 훌륭하다. 아, 좋은 사람만이 웃을 줄 아는구나.

일화를 소개한다. 그분은 디스크 등을 전문으로 하는 의사라서 지인의 진단을 받으려고 함께 갔다. 엑스레이도 찍고 이것저것 상담도 했다. 약 처방도 물어보고 운동요법도 물어보았다. 과거병력도 말하고 생활습관도 말했다. 허리 쪽 디스크라는데 아프긴 다리가 아프다. 저리고 시큼하고 괴롭다. 그런데도 잘 고쳐지지 않는다. 이런 오랜 상담을 한 후 그분은 ‘기능성 장애’라는 결론을 내놓았다. 이런 이상한 병명에 나는 곧바로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답은 ‘그거요, 의사도 잘 모를 때 쓰는 병명이에요.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아프긴 아픈 거 말입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구조는 별 탈이 없는데 기능할 때 문제가 생긴다는 뜻이었다.

여러분, 의사가 기능성 장애라고 하면 속지말아요. 그건 그저 의사가 잘 모르겠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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