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굴레 마음
둥굴레 마음
  • 변정순 <수필가>
  • 승인 2014.06.15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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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변정순 <수필가>

둥굴레 넣고 한 소큼 끓인다. 맛보지 않아도 구수한 냄새가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둥굴레는 우리살림살이에 아주 밀접한 식물이다 보니 둥굴레 차도 습관처럼 마신다. 이 또한 매우 좋은 자양강장 식품이며 약제이다. 둥굴레를 처음에는 황계(黃鷄)라 불렸는데 당대의 신의 화타가 황정(黃精)으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동양사상에서 황색은 땅을 가리키므로 황정은 「땅의 정기」혹은 「정력을 튼튼히 하는 노란색의 약초」란 뜻이다. 중국 한 무제가 어느 마을을 지나다 밭일을 하고 있는 한 노인의 등에서 광채가 나는 것을 보았다. 어린 아이와 같은 얼굴에다 희고 고른 치아와 검고 윤택한 머리칼을 날리는 것이 보통 사람은 아닌 듯 했다. 기인이다 싶어 물어보니 “별다른 비법은 없습니다. 그저 하늘이 준 수명대로 사는 것뿐이지요. 단지 젊음과 정력은 야산의 정기를 듬뿍 간직한 황정을 캐먹은 덕인 줄로 아룁니다.” 라고 하였다 한다.

둥굴레의 어린순은 나물로 먹고 뿌리줄기는 생식, 굽거나 쪄서 먹기도 하고 말려 서 약으로 쓴다고 했다. 뿌리는 영양가 높은 자양식품으로 단맛이 있고 전분이 많아 흉년에는 구황식품으로 이용했단다. 올 가을에는 뿌리를 채취하여 둥그레 차를 만들어 볼까 싶다. 사슴이 즐겨먹는다는 황정은 약주로 만들면 그 작용이 더욱 강해지고 이 술을 선인주(仙人酒)라 한다. 이처럼 둥굴레는 우리 주변에 널려있으면서도 어려울 때 민초들의 허기를 면해 주고 풍요로울 때는 서민의 건강을 지켜주던 식물이었다. 지금도 산속에 들어가면 눈에 띄기도 하고 취미 있는 이들이 화분이나 화단에 심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을 캐어서 차를 만들어 먹는 사람은 드물다. 중국산이라도 이미 먹기 좋게 만들어 시중에서 판매하니 쉽게 구할 수 있다. 어쩌다 우리 집에 까지 와서 관심을 받지 못했어도 자기 몫을 톡톡히 해내는 둥굴레가 참 가상하기도 하다.

그저 평범한 둥굴레를 바라보고 있으면 다정한 그녀가 떠오른다. 긴 연수를 맡아 진행하면서 연수생들에게 하나라도 더 도움을 주려고 노력을 했다. 별의별 성격을 가진 사람들의 요구를 들어주면서도 한 번도 찡그린 얼굴을 본적이 없다. 그녀와의 만남은 즐겁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분명 그분과의 갈등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도 그렇게 들리지 않고 남편 흉을 보았는데도 흉이 아님을 느끼게 만드는 그녀. 참 묘한 매력이 있다. 연수 마지막 날, 그녀와 멋진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나오는데 바로 길옆이 움푹 패어있었다. 여운은 잠시, 조심하라고 일렀지만 피해갈수 없을 정도의 좁은 길에 철이 놓여 진 패인 곳을 밟고 지나다 바퀴가 덜컹덜컹. “그 길은 식당주인이 정비해야 되는 것 아냐? 손님들이 오가는 차량 길을 어떻게 저리 해놓고 식당을 운영해.” 보험 서비스를 기다리는 동안에 나는 식당 주인의 성격을 들먹였다. 나뿐만이 아니고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자신의 일이 제일 급하다. 특별이 사람이 나빠서기보다는 원래 자기중심적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런데도 그녀는 자기 때문에 늦어져서 미안하다고 자신보다 내입장만 걱정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나는 택시를 타고 갈까 다른 연수생차를 타고 갈까하고 잠시 동안 생각이 짧은 내 자신이 창피했다.

평소에 눈여겨보지 않았던 둥굴레에 매력을 흠뻑 느끼는 요즘, 마당 한 구석에 무더기로 있어 손이 젤 안 갔던 식물 둥굴레, 새봄부터 지금의 유월에도 똑같은 모습으로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꽃 속에서 벌들의 잔치가 시작되고 유백색의 은방울 연주를 들었다. 잎겨드랑이마다 두개씩 조롱조롱 매달린 꽃이 앙증스럽고 줄기를 감싼 연갈색의 포(苞)가 분위기를 한층 돋우니 청초하면서도 품위 있는 자태가 그녀의 모습 같다.

오늘은 둥굴둥굴 둥굴레 마음 같은 그녀에게 사진 한 장 찍어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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