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침과 부딪침에 대하여
마주침과 부딪침에 대하여
  • 김기원 <시인·문화비평가>
  • 승인 2014.06.12 2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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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금요편지
김기원 <시인·문화비평가>

사노라면 싫든 좋든 많은 사람들과, 이런저런 일들과, 뜻하지 않은 사건사고와, 변화무쌍한 자연현상들과 마주친다.

내 의지와 관계없이 필연과 우연으로 또는 의도하고 준비한 대로 말이다.

마주침에는 서로 엇갈리는 중에 스치는 교차(交叉), 우연히 만나고 마주치는 봉우(逢遇) 그리고 두 가지 일이 공교롭게 마주치는 상치(相値), 사물이 서로 어울리지 아니하고 마주치는 상충(相沖)이 있다.

부딪침은 서로 맞부딪치는 충돌(衝突), 또는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갑자기 부딪치는 역학적 현상을 이름 한다. 유의어로 들이받다, 맞부딪치다, 충돌하다 등이 있다.

대체적으로 마주침은 우연성이 강하고, 부딪침은 의도성이 강하다. 그러므로 마주침은 자신의 의지와 관련 없이 생성되고, 부딪침은 자신의 의지로 생성된다.

마주침에는 호불과 행불이 따른다.

어쩌다 마주친 선남선녀가 눈이 맞아 사랑을 하게 되고 결혼하여 자식까지 낳아 행복하게 사는 호연이 있는가 하면, 변심한 여자 집에 남자가 찾아가 딸 내놓으라고 실랑이를 벌이다가 부모를 흉기로 찔러 죽이는 어처구니없는 악연도 있다.

우연히 마주쳐서 한 커플은 행복했고, 한 커플은 원수가 되었다. 이런 마주침이 쉼 없이 이어지는 게 인생이다.

우연한 길에 좋은 멘토를 만나거나 좋은 친구를 만나 인생이 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우연한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반신불구가 되거나 나쁜 친구를 만나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람도 있다.

그러므로 스쳐 지나가는 우연일지라도 그 인연을 허투루 해서는 안 된다.

인과응보의 주체는 언제나 자신이므로, 상대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베풀면 호연이 되고, 배신하고 소홀히 하면 악연이 되는 게 인연법이다.

‘어디 한 번 부딪쳐보는 거야’ 라는 대중가요가 있다.

불의에 항거하고 자신이 세운 목표를 향해 몸과 마음을 던지는 인간행위는, 우연이 아닌 의지의 소산이다.

그렇다. 이런 저항과 도전의식이 부딪침에 스며있는 것이다.

마치 다윗이 골리앗에 맞서듯, 안중근 의사가 일제에 맞서듯 말이다. 그러므로 잘하면 다윗처럼 승리의 면류관을 쓰고 영광을 누리나, 안중근 의사처럼 자신의 목숨을 초개처럼 던지는 희생을 감내해야 한다.

부딪치면 에너지가 발생한다. 극과 극이 부딪히면 서로 밀어내려 하고, 반대면 서로 당기려 하는 상호작용의 에너지가 발생하는 것이다. 손바닥이 부딪치면 소리가 나듯, 부딪치면 파열음도 생기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시절엔 부딪침을 좋아했고, ‘운명아 비켜라 내가 간다.’며 호기도 부리며 살았다.

때론 좌절로, 분노로, 슬픔으로 부딪쳐 자신에게 생채기를 내기도 했다.

부딪침은 용기와 내공을 필요로 한다. 용기는 있으나 내공이 없으면 모래위에 지은 성처럼 힘없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노년이 되면 청춘의 만용도 사라지고, 웬만한 일로 쉬 분노하거나 흥분하지 않아 실수가 줄어든다. 그러나 부딪쳐야할 순간에 부딪치지 못하고 재거나 망설이게 된다. 부딪칠 내공은 저녁놀처럼 화려하나 뜨겁지 않으니 그럴 수밖에.

그러므로 청춘에게 말한다.

머뭇거리지 말고 마주치고, 마음먹은 대로 부딪쳐라. 마주침과 부딪침에 주저하는 젊음을 어찌 청춘이라 부르랴.

마주치고 부딪치며 단련되고 성숙되느니. 한 번 뿐인 유한한 삶, 거부할 수 없다면 긍정하고 즐기시라.

부딪치는 상대가 있고,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건, 살아 있다는 반증이다. 오늘도 마주치는 사람들과 꽃과 나무와 한줄기 바람에게도 감사하며 사는 거다. 겁먹지 말고, 짜증내지 말고, 의미 있게, 유쾌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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