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부터 나만이라도’라는 생각이 새싹 돋네요
‘나부터 나만이라도’라는 생각이 새싹 돋네요
  • 박상옥 <다정갤러리 대표·시인>
  • 승인 2014.06.10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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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박상옥 <다정갤러리 대표·시인>

피로연 자리에 우연히 몇몇 단체장들이 원탁에 둘러앉아 말을 주고받습니다.

“미친놈들 아직도 못 잡는 게 말이 돼!(유병언을 두고 한 말인 듯)”

“그러게 말입니다. 지금이 어느 시댄데. 첨단 정보시스템을 활용하면 못할 게 없는 세상인데 못 잡는 게 아니라 안 잡는 건지도 모르죠.”

“큰일이야 나라가 세월호 사건에 정신없는 데, 중국과 러시아는 전략적으로 다양한 위협과 도전에 대해 공동대응을 하기로 했다는데. 말이 좋아 아시아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추구한다지만 결국은 일본을 견제하는 것일 테고.”

“정말이지 일본이야말로 약았지요. 역사왜곡으로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자, 일본인 납북자 재조사를 미끼로 북일 단독협상을 맺었네요.”

“맞습니다. 뭔가 국제적으로 새로운 변화가 보이는데, 우린 도대체 어쩌려고 이러는지 이러다간 또다시 고래 등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나라 신세가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에고 세월호 사건도 어떻게든 빨리 마무리되면 좋겠어요. 도대체 경제도 민심도 너무 가라앉아 살맛이 안 나요.”

“그래도 안 그래요. 늦더라도 이참에 정말 확 바꿔야 해요. 대통령이 국가개조 한다고 했으니 좀 지켜봐야지요.”

“아무려나 우리나란 안돼요. 정말 안돼요. 관피아나 해피아를 봐요. 우리 국민성이 그래요. 때문에 허구한 날 침략당한 역사밖에 없고, 이권싸움이나 하고. 땅덩어리마저도 작으니 힘이 더 없어요.”

그때였습니다. 단체장들 속에서 말없이 조용히 식사하던 여인이 당찬 목소리로 나섭니다.

“잠깐만요. 도대체 왜. 안된다고 하시나요. 뭐가 안 된다는 거지요. 이제라도 잘하면 되지요. 늦은 건 없어요. 나라가 작다고요 잘 사는 건, 땅의 크기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 국민이 얼마나 행복한가로 결정되는 거 아닌가요 제가 정치는 모르지만, 아무리 땅이 넓어도 국민이 행복하지 않으면 못사는 나라고, 아무리 작은 나라도 국민이 평화롭고 행복하면 잘사는 나라가 아닌가요 이제야말로 뭔가 국가개조 한다는데, 지역에서 나름 알려진 분들의 자조적이고 무책임한 말이 실망이네요.”

예의 차리듯 그저 중얼중얼 식사하던 분위기가, 각이 딱 선 그녀의 말에 살벌 쌉싸름하니 서먹해졌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접시의 음식을 다 먹고 조용히 일어서던 여자, “세월호 때문만이 아니겠죠. 핍박받고 이용당한 역사적 트라우마가 우리에게 있는 거죠.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알게 되었으니 이겨야지요. 적은 이미 우리들 속에 있어요. 여러분처럼 훌륭한 직책을 갖고 계신 분들에게서, 남의 탓 말고 나만이라도 잘하겠단 다짐이나 의지를 보고 싶어요.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혼자 곁에서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려니 속이 시원해졌습니다.

그날 밤 음악회를 끝내고 나오려니 어스름 좁은 계단에서 누군가 구부린 채 무언가를 줍고 있습니다. 뭐 하세요 “비닐조각이 떨어져 있네요.” 조금 후엔 학생들이 쏟아져 나올 텐데….” 높은 하이힐에 치렁한 옷을 입고 구차한 느낌도 없이 비닐조각을 줍고 있는 여인이 아름다웠습니다. 

새삼 알았습니다. 50대 중반의 총총히 사라지던 여자 때문에, 계단에서 비닐조각을 줍던 여인 때문에 알았습니다. 그런 여자가 낳은 자식이 나라를 이끌고 미래를 열거라는 것을, 이제라도 모든 공직자들이 앞서가는 국민의식을 따라줘야 한다는 것에 대해 설레었습니다. 나부터 나만이라도 우리는 이미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실천하는 싹을 틔우고 있음에 희망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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