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의 하루
초여름의 하루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4.06.09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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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계절은 계절마다 나름의 모습이 있다. 초여름도 예외는 아니다. 녹음방초승화시(綠陰芳草勝花時)라는 초여름을 일컫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초여름은 뭐니뭐니해도 우거진 나무 그늘과 향기로운 풀이 그 풍광의 중심이 아닐 수 없다. 초여름을 지내야 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초여름의 풍광을 벗 삼아야만 마음의 평온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동진(東晋)의 시인 도연명(陶淵明)은 자신의 초여름 나기를 담담한 어조로 읊고 있다.



◈ 산해경을 읽으며(讀山海經)

孟夏草木長(맹하초목장) : 초여름이라 초목은 자라나

繞屋樹扶疎(요옥수부소) : 집을 빙 둘러 나무가 무성하다

衆鳥欣有託(중조흔유탁) : 새들은 의지할 곳 있음 기뻐하고

吾亦愛吾廬(오역애오려) : 나도 내 초막집을 좋아하노라

旣耕亦已種(기경역이종) : 이미 밭 다갈고 씨도 뿌리고

時還讀我書(시환독아서) : 때로 돌아와 나의 책을 읽는다

窮巷隔深轍(궁항격심철) : 외진 마을이라 깊은 수레바퀴 자국과 거리가 멀어

頗廻故人車(파회고인거) : 번번이 친구의 수레를 돌려보낸다

歡然酌春酒(환연작춘주) : 기쁜 마음으로 봄 술 따르고 

摘我園中蔬(적아원중소) : 내 텃밭 안의 채소를 따노라

微雨從東來(미우종동래) : 보슬비는 동쪽에서 날아오는데

好風與之俱(호풍여지구) : 좋은 바람도 함께 실려온다

汎覽周王傳(범람주왕전) : 주나라 임금의 이야기 죽 읽어보며

流觀山海圖(유관산해도) : 산해경의 그림을 쭉 훑어본다

俯仰終宇宙(부앙종우주) : 내려보고 또 올려보고 우주를 모두 다 보니

不樂復何如(불락복하여) : 즐거워하지 않고 또 어떻게 하겠는가

 

※ 초여름은 초목이 무럭무럭 자라난다. 집을 빙 둘러 자라난 나무는 잎이 무성해졌다. 전형적인 초여름 풍광이다. 시인이 초여름을 좋아하는 것은 그 풍광 때문만은 아니다. 뭇 새들이 무성한 나무에 마련한 둥지를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시인도 자신의 초막집에 대한 애정이 솟아나서 시인은 초여름이 좋다. 밭 갈고 씨 뿌리는 바쁜 농사일도 대충 지나가서, 가끔 들에서 돌아와 평소 읽고 싶던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시인은 초여름이 좋다. 시인은 수레 타고 와서 번다한 세상일에 대해 이야기할 친지들이 찾아오지 못하도록 수레바퀴가 이를 수 없는 외진 곳에 살고 있다. 대신 봄술을 빚고 몸소 재배한 채소를 따서 이웃과 즐긴다. 이것도 초여름이 주는 기쁨이다. 가는 비가 내리고 알맞은 바람이 불어오고 하는 계절도 초여름이다. 여기에 세속의 일과 무관한 산해경(山海經) 같은 책을 읽으며 무궁무진한 우주의 이치를 살필 수 있으니 초여름이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시인이 초여름을 좋아하는 이유 속에 삶에 대한 관조가 듬뿍 배 있다.

인생을 즐겁게 사는 사람들의 특징은 주변의 소소한 것들로부터 즐거움을 찾아내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의 번다한 일로부터 자신을 차단한다는 것이다. 초여름이 꼭 좋은 것만 있는 게 아니다. 문제는 좋은 것을 볼 줄 알고 그것을 즐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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