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에서 숨고르기
세상 속에서 숨고르기
  • 김희숙 <수필가·산남유치원교사>
  • 승인 2014.06.03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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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희숙 <수필가·산남유치원교사>

다시 만나는 아침, 베란다 창을 통해 세상을 들여다본다. 사각의 통로 밖에서 아리게 나를 응시하는 푸른빛에 끌려 시선을 멀리 던진다.

겹겹이 둘러쳐진 산들이 계절이 익어가는 것을 알리듯 깊은 초록으로 부풀어 탱탱하게 흔들리고 있다.

조심스럽게 아래를 내려다 본다. 푸르게 찰랑이는 나무들이 시야에 들어오고 놀이터에는 모자를 눌러쓴 아이가 나풀거리며 뛰고 있다. 잠시 귀를 열어 본다.

아파트 앞 상가쪽에서는 새로 조성된 아파트 상가답게 새단장을 하는 듯 아침을 두들기는 연장들의 투닥이는 소리가 정겹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니 아침이 여물지 않아 희미한 빛을 발하고 있다. 창문을 열자 커튼을 펄럭이며 온기를 품은 바람이 옷 속으로 스미고 나는 상큼한 아침 속으로 스민다. 잠시 숨을 고른다. 나는 오늘도 세상 속으로 나설 설레임으로 두근거린다.

그 동안 내 삶의 이유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유아 교육에만 전념했었다. 그런 내게 선물처럼 행복한 시간들이 찾아왔다. 나는 요즘 학습연구년을 맞아 새로운 세상을 알아가고 있다. 교육 현장에만 있다가 세상에 나와 보니 그곳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여러 모습으로 살고 있으며, 온갖 지식과 알아야 할 것들이 도처에 널려있다.

현장에서는 잘난 줄 알고 건들거렸던 내가 세상이라는 거대함에 압도되어 겸허하게 된다. 내가 누구인지 왜 그리 바쁘게 움직이는지 모르며 살아왔던 상실된 무수한 어제를 생각한다. 되찾고 싶은 수많은 어제를 의미 있는 내일로 만들기 위해 난 오늘도 세상 속으로 조심스러운 걸음을 떼고 있다.

그동안 왜 그리 바쁘게 살았냐고 말하는 듯 바람이 머릿결을 흔들며 속삭이고, 이제는 네가 누군인지 알며 살라고 재잘거리는 듯 햇빛은 발랄하게 발 뒤꿈치를 따라온다.

오늘은 유아의 뇌 그리고 학습이라는 주제의 강연을 들을 것이다. 그리고 컨설팅에 관련한 강의를 들으러 갈 것이다. 밤 여덟시까지 이어지는 강행군이지만 벌써부터 두근거린다.

어제는 그동안 미루어왔던 문학 강연을 들었다. 김춘수 오규원 바슐라르를 되새김질 하며 인식의 주체가 아닌 대상의 세계로 들어가 세상을 보는 눈을 만나 행복감에 젖었다.

내일은 도서관의 책꽂이를 뒤쳐 세잔느와 랭보 그리고 샤갈을 보며 유동하는 영혼을 만날 것이다. 하루하루가 두렵고 떨리는 새로운 마음으로 난 오늘을 산다.

올 한해는 내 인생의 발효시기이다. 세상이라는 발효제를 넣어 부글부글 조심스럽게 발효 시킬 것이다. 내년에 현장으로 돌아가 올 한해가 헛되지 않도록 발효시켜, 유아들을 위한 밑걸음이 되는 의미 있는 한해를 만들어 갈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만나는 모든 아이들에게 행복한 설렘을 만나게 해야겠다. 겸허하게 그리고 소리 없이 세상은 돌아간다. 잠시 행복한 숨을 고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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