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는 세상
허형만 장대비가 수직으로 내리꽂는 저녁
숲길을 스스로 장대비가 되어 흐르는
아카시아 꽃무리가 있다
온전히 자신을 던져 별 대신
하얗게 길을 밝히는 꽃잎의 행렬
꽃잎들이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는다
장대비를 견디지 못하고
톡톡 부러진 나뭇가지들이 있긴 하지만
이만한 장대비는 결코 절망이 될 수 없다고
온몸으로 태풍도 꿋꿋하게 견디는
검붉은 옹이 박힌 적송 곁에 서서
묵묵히 흘러가는 꽃무리를 바라보는 나에게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숲과 바람과 빗방울은 묻지 않는다
※ 오월의 숲은 꽃의 길입니다. 아까시나무, 쪽동백나무, 때죽나무, 일제히 하얀 꽃잎으로 내려앉아 숲길을 환하게 밝혀줍니다. 향기로 밟혀오는 꽃길에 쉬이 걸음을 내딛기 미안한 계절이기도 합니다. 온몸을 던져 땅의 별이 되는 꽃의 절명. 떠나는 자리마저 자연에서 배우는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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