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용돌이를 지나서 얻는 것
소용돌이를 지나서 얻는 것
  • 박상옥 <다정갤러리 대표·시인>
  • 승인 2014.05.27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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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박상옥 <다정갤러리 대표·시인>

그 어떠한 소용돌이도 시간이 지나면 멈추게 되어 있습니다. 그 어떤 진흙탕도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습니다. 그 어떤 빛도 시간이 지나면 어둠을 맞이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루가 아닌 것처럼 또는 영원이 아닌 것처럼 살아가는, 이방순 여사를 만나러 제천 백운면 애련리로 갑니다.

행정상으론 충주시 산척면 석천리가 되는 명암마을. 국도에서 내려서자마자 산이 깊어 청량감이 온 몸을 비집고 들어오는데. 다녀갔던 몇 년 전을 생각하니 길가에 새로 들어선 전원마을에 하나같이 예쁜 집들이 이국의 풍경입니다. 차를 달리니 길 만큼만 하늘이 열리며 구름이 동동 길안내를 합니다. 이렇게 직진만 하다 결국 차를 돌리지 못하고 말거란 걱정이 드는 길 끝에서 차를 세웁니다. 자갈돌이 깔린 길에 내려서서, 돌 틈에서 하얀 마아가렛이 핀 언덕을 올려다보고, 그 언덕을 올라서면 숨겨 놓은 듯, 조그만 집 한 채가 나타나니 이방순여사의 집입니다. 놀랍습니다. 꽃밭 같은 채소 밭, 풀 한포기 없이 채송화가 깔린 마당, 눈만 뜨면 풀이 돋는 전원생활을 이렇듯 정갈하게 할 수 있음에 놀랍니다. 즉석에서 만든 야채샐러드와 거칠지만 고소한 잡곡 식사 후엔 손 뻗어 따먹는 딸기 맛도 놀랍습니다.

평소 은은한 품성에서 초연함이 느껴지는 여사. 시내를 한번 나오려면 한 시간을 걸어 나와 다시 버스를 타야 한다는데, 약속시간에 늘 먼저 와 살포시 웃으시니, 나의 시간이 귀한 만큼 남의 시간도 귀하기 여기기 때문이랍니다. 남편을 만나 영국으로 떠났고, 영국에서 20여년을 살다가 아이들이랑 남편을 두고 시어머님을 간병을 위해 들어 왔으니. 힘든 날도 있었을 테지만 늘 한 가닥 내색도 없는 65세의 고운 여인입니다. 강원도 운학리에 살다가 이웃에 개 사육장이 들어와 충주로 왔다는데 본인이 필요하여 이사를 왔을 뿐, 아무런 불만도 내색도 없습니다. 집터를 속아서 비싸게 샀고, 결국엔 집을 짓지 못하고, 컨테이너 박스에 지붕만 얹어서 살고 있지만. 그녀의 손길이 만든 정갈하고 소박한 정원이며 텃밭은 어떤 돈을 지불하고도 살 수 없는 가치가 느껴집니다.

산속의 전원생활, 건강은 물론 삶의 가치가 좋아졌다는 그녀의 말을 믿습니다.

이국에 가족을 두고도 그리움을 따로 말하지 않으며. 커다란 이층집서 파티도 즐기고 정원를 가꾸며 남 보기에 잠시 우아하게 살았다는 추억을 말할 땐, 지금의 삶이 남에게 그리 대단해 보이진 않지만 그저 만족하다며 웃을 땐. 돌아가고 싶다는 건지 그립다는 건지 도무지 그 처연한 미소에 꽉 잡히고 맙니다. “집에서 책을 읽거나 일을 할 때, 깃들어 사는 새들이 도대체 왜, 외출도 안 하느냐고 하는 것 같아 기회가 되면 가끔 외출한다”고 말하는 마음 씀이 맑습니다.

사람에게서 또 배웠습니다. 남에 눈에 비친 제 모습을 신경 쓰지 않는 자신감. “내가 세상을 다 좋아하지 않는데 어떻게 세상이 나를 다 좋아해 주길 바라냐”고 하는 겸손함. 가족이나 모두를 놓고도 모두를 누리는 듯 느껴지는 사람에게 드는 경외감. 조용한 말투에서 그 고운모습이 내면에서 오는 것임을 배우고 돌아섭니다. 비가 내리면 잠겨 버리는 계곡잠수교를 두 개나 지나, 언제 지었는지 모를 좁고 낡고 위태로운 다리를 건너서, 나는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人災)가 넘실거리는 도시로 돌아옵니다. 세월호 사건이 경악할 만한 일임에도 결국은 나에게도 닥칠지 모르는 사고가 염려되어 아우성이었다고 이기심이 고백합니다. 어쨌거나 이제는 초연해 보자고 다독이는, 깨달음은 가르침이 아니라 실천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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