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비스 신드롬
제노비스 신드롬
  • 양철기 <충북학생외국어교육원 연구사·박사·교육심
  • 승인 2014.05.26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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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으로 보는 세상만사

양철기 <충북학생외국어교육원 연구사·박사·교육심리>

새벽 뉴욕 주 퀸스 지역 아파트 단지에서 제노비스라는 20대 여성이 무참히 살해됐다.

제노비스가 차를 주차하고 나왔을 때 한 남성이 다가와 흉기로 등과 배를 찔렀다. 그녀는 “이 남자가 날 찔렀어요. 도와주세요.”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동네 사람들 집에 불이 켜졌고 누군가는 고함을 질렀다. 범인은 불빛과 소리에 도망쳤다. 그리고 다시 아파트의 불빛이 꺼지기 시작했다. 범인은 돌아와 도망가는 여성을 찾아 흉기로 찌르고 성폭행을 했다. 여성은 다시 소리를 질렀다. 아파트에서 또다시 불빛이 켜지기 시작했다. 범행은 35분 동안 지속됐다. 그동안 창가에서 이 모습을 구경한 사람은 38명이었다. 한 명이 사건이 끝나고 경찰에 신고했지만, 그녀의 목숨은 이미 끊긴 후였다.

당시 신문들은 도시인의 침묵과 소심함, 냉담함 무관심을 질타했으며 시민들은 방관자 38명의 명단을 신문 1면에 게재하라고 아우성쳤다.

성격보다는 상황의 힘을 더 믿는 실험사회심리학자인 달리(J. Darley)와 라타네(B. Latane)는 이 38명을 이해하기 위해 실험을 했다. 여학생 59명과 남학생 13명을 모았다. 피실험자들은 밀폐된 방에 각 1명씩 들어갔다. 다른 방과는 마이크와 스피커를 통해 다른 학생들의 이야기가 전달됐으며 서로 볼 수 없었다. 학생들은 돌아가면서 각 2분 동안 자신의 대학생활에서 어려운 점을 마이크로폰을 통해 털어놓도록 했다.

처음 발언자는 간질환자였다. 그는 실험자가 준비한 배우였다. 그는 마이크로폰으로 간질을 앓고 있어 발작을 자주 일으킨다고 말했다. 대학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하던 그가 발작을 일으켰다. 그는 발작을 일으키면서 도와달라고 소리쳤다. 도와달라는 목소리는 제노비스 사건과 마찬가지로 6분 동안 이어졌다. 마지막에는 ‘누누누군군군가가 도도도와 주신다면 고고고맙겠어요. 제제제발, 꺼억, 주주죽을 것 같아요’ 라고 하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결과는 어떠했을까?

집단의 크기에 따라 다양한 결과를 보였다. 간질 환자를 도와줄 피실험자가 자신 말고 4명이 더 있다고 믿게 만든 학생들은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반면 자신과 간질 발작 학생 단둘이 있다고 믿었을 때는 피실험자의 85%가 발작이 일어난 지 3분 안에 도움을 청하는 행동을 했다.

여기서 달리와 라타네가 발견한 것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남을 돕는 이타적 행위는 집단의 규모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흔히 집단규모가 클수록 두려움이 적어지고 대담해져서 위험을 무릅쓸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할 것이나, 실제로는 방관하는 집단으로 인해 도움을 주는 행위가 억제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단 한 명의 사람과 등산하다 발목을 삔다면 그의 도움을 받을 확률은 80% 이상이다. 이런 현상을 책임감 분산이라고 한다. 책임감 분산이 사회적 예절(도와달라는 소리를 질렀다가 창피를 당하면 어떡하지… 등)과 결합한다면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해 생사가 걸린 상황도 무시하게 된다.

두번째는 이타적 행위와 시간과의 관계다. 어떤 사건이든 처음 3분 안에 비상사태를 보고하지 않으면 그 후 어느 시점에서도 보고할 가능성이 없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꼼짝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사회학자 비먼은 대학생들에게 달리와 라티네의 실험을 녹화한 필름을 보여줬다.

그 필름에는 남을 돕는 행위가 5단계(1단계 사건 목격/2단계 도움 필요성 인식/ 3단계 책임감 인식/ 4단계 취할 행동 결정/5단계 행동)로 나눠져 있었다. 필름을 본 학생은 보지 않은 학생보다 2배 이상 비상상황에서 도움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필름을 본 학생들은 얼음 위에서 미끄러진 여성이나 발작을 일으키는 간질환자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것은 장소를 불문하고 생긴 일이었다.

남을 돕고 위기를 관리하는 능력은 개인의 성격보다는 지속적인 교육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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