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꿈꾸다
자유를 꿈꾸다
  • 이창옥 <수필가>
  • 승인 2014.05.26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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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창옥 <수필가>

손바닥에 감겨오는 바람이 부드럽다. 한 손에는 운전대를 다른 한 손은 차창 밖으로 쭉 뻗어 손바닥을 쥐락펴락하면서 감겨오는 바람과 놀이를 한다. 금방이라도 손을 움켜쥐면 손안에 가득 잡힐 것만 같은 바람이지만 손가락 사이사이 간지럼만 태우고 떠나면 이내 다른 바람이 살갑게 감겨온다.

바람의 속살거림은 계절마다 다르고 날마다 다르며 시간마다 다르다. 눈 오는 날 바람에서는 맑은 영혼의 향기가 느껴진다. 비 오는 날에는 무겁지만 청량한 탄산음료 같고, 안개 서린 날에는 은둔자의 냄새가 폴폴 난다. 또 햇살 좋은 날에는 까르륵 웃어대는 아가의 분 냄새가 나는 듯 평화롭다. 날마다 시시각각 다른 모습으로 속살거리는 바람이다. 눈에 보이지도 그렇다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바람이지만 그래서 나는 바람이 마냥 좋다.

운동 신경과 순발력이 젬병인 내가 운전을 배우고 면허를 손에 쥐기까지는 남편의 공로가 컸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운전을 배운 가장 큰 이유는 흔적 없는 바람이 좋아 바람처럼 자유롭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자동차의 차가움이 주는 두려움이 온몸을 움츠러들게 했다. 주민등록증을 빼고는 유일하게 내 이름 석 자로 된 국가 공인자격증, 그것도 순발력부족과 기계치라고 수동은 얼씬도 못하고 2종 보통오토면허증이다.

아무렴은 어떠하랴. 두 발 아닌 네 바퀴로 가고 싶은 곳 어디든 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냥 설레기만 했다. 면허증을 받던 첫날, 운전학원 문턱 한번 넘지 않고? 남편의 도움만으로 손에 쥔 면허증이 자랑스러워 큰 도로로 용감하게 차를 몰고 나갔다. 맞은편 차선에서 오는 차가 금방이라도 나를 향해 돌진할 것만 같고 뒤따라오는 차도 밀려오는 파도가 되어 내 차를 덮칠 것만 같았다. 바짝 따라온다고 투덜거리며 차선변경은 꿈도 못 꾸고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목적지를 그냥 지나쳐 버렸다. 예전에 누군가는 고속도로 용감하게 탔다가 서울에서 부산까지 갔다더니 내가 영락없이 아스팔트 위를 떠도는 섬이 될 뻔했다.

문득 초등학교 때 키보다 더 큰 자전거를 오빠들 몰래 끌고나가 혼자 배운다고 고생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도 온몸이 성한 곳 없이 멍들고 상처를 훈장처럼 달고 난 후에야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다. 한숨을 돌리고 나니 자동차 뒤에 숨기듯 붙인 초보운전딱지가 보였다. 다시 떼어내 잘 보이는 곳에 붙이니 든든한 방패가 된 듯 위로가 됐다.

그럼에도 한동안은 운전에 주눅이 들고 차도에 있는 차들이 무서워 바람과의 향연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야 도로 위에 있는 차들이 나를 덮칠 것 같은 무서운 존재가 아닌 동질감으로 느껴지고, 차창 밖으로 손도 내밀어 바람의 속살거림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내 힘으로 운전하며 가고 싶은 곳을 다니다 보니 운전의 오묘한 매력에 빠져든다. 그리고 우리네 세상살이와 많이 닮았음을 발견한다.

갓난아이가 걸음마를 배워 뒤뚱거리며 한발 한발 옮겨 놓을 때는, 따끈한 면허를 손에 쥐고 설렘과 두려운 마음으로 차를 처음 운전할 때와 같다. 걸음마를 다 배워 빨리 걷기도 하고 때론 달음박질도 쳐가며 마냥 좋아라 할 때는 운전이 익숙해져 어디든 갈 수 있다고 자신감이 붙어 갈쯤이다. 아이가 자칫 방심으로 넘어질 때처럼 사고의 위험성이 가장 높을 때라고 남편이 핀잔을 주며 조심하라고 연신 타박을 하던 때도 이 시기였지 싶다.

그렇게 한해 두 해 지나 십 년이 넘으니 운전하는 일도 습관처럼 몸에 붙어 일상이 됐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살이도 오랜 시간 온갖 시행착오를 거치며 넘어지면 털고 일어나고, 또다시 넘어져 깊은 상처가 나면 치유하며, 그렇게 바람처럼 흘러가 일상이 될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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