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 뜰에서
초여름 뜰에서
  • 이효순 <수필가>
  • 승인 2014.05.25 19: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이효순 <수필가>

현관 계단을 내려선다. 온통 푸르다. 작은 뜰이 마치 음악회를 여는 것처럼 갖가지 들꽃으로 여기저기 수놓는다. 꽃달개비 보라색 바이올린, 흰색달개비 비올라, 키 큰 섬초롱꽃 콘트라베이스, 흰꽃으아리 하프, 자주종덩굴 크라리넷, 빨간왜철쭉 피아노. 모두 모여 연주하는 듯 초여름바람에 일렁이며 춤을 춘다. 지휘자의 지휘에 맞추어 열심히 연주하는 모습 같다.

연분홍 분홍달맞이는 화사한 얼굴로 그들의 연주를 감상한다. 저쪽에 애기달맞이 작은 손을 펴서 그들의 연주에 박수를 보낸다. 자연에서 눈으로 전해지는 소리 없는 들꽃의 연주는 꽃의 빛깔과 모양으로 마음에 가득 찬다. 이렇게 되기까지 30년이 걸렸다. 아무것도 없던 불모지 같았던 작은 터만 있는 집이었다. 잡초 몇 포기가 담 밑으로 나있던 집, 열심히 그 집을 가꾸고 꽃을 심어 오늘 같은 푸른 여름을 이곳에서 맞는다.

그렇게 모든 것을 이루려면 온갖 정성을 기울여 열심히 가꾸어야 좋은 결과를 볼 수 있지 않은가. 작은 마당에 서서 바라보는 마음은 참 흐뭇하다. 하나님이 에덴동산을 아름답게 만드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셨던 창세기 구절이 떠오른다.

들꽃은 도입종에 비하면 화려하진 않지만 소박하고 은은한 매력이 있다. 그 꽃의 매력에 이끌리어 어린 시절부터 나는 들꽃을 좋아했다. 고향집 뒷산에 가면 꿀풀, 진달래, 철쭉. 할미꽃, 철 따라 피고 지는 꽃들이 나를 사로잡았고, 그것도 모자라 꽃을 캐다 뒤꼍에 심기도 했다. 유년기의 기억 속에 있던 세월을 작은 집 뜰 안으로 하나하나 들이기 시작했다. 가끔 죽는 경우엔 내 마음을 슬프게 했고 다시 꽃집으로 가서 그 꽃을 구해다 심었다. 그렇게 하기를 이 집 이사 오던 때부터 30년 가까이 계속했다. 제법 야산처럼 조성된 작은 숲이 되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다.

남편도 어느덧 그 속에 빠져들었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소박한 꽃들에게 부지런히 물을 준다. 그 모습을 보니 지난 시절이 간절하다. 결혼 초에 사글셋방에 살면서 주인집 꽃밭에 열심히 꽃을 가꾸던 일, 내게 참 여유 있어 좋다는 말을 했었는데. 그러나 남편도 관심 갖는 만큼 뜰이 푸르게 변하며 여기저기 들꽃 피는 모습에 마음이 열린 것 같다. 그래 내가 조금 편해졌다. 물도 주려면 한참 걸린다. 어느 땐 힘들어 귀찮기도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직은 꽃이 좋아 작은 뜰, 작은 화분에 사랑을 심는다. 푸른 생명을 심는다. 그들을 가꾸고 진실을 배우며 또한 삶의 길잡이로도 삼는다.

그들이 싹이 나서 자라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한 해를 보내는 모습 어쩌면 우리들의 삶의 여정과 같은 것을 옆에서 본다. 볼수록 빠져드는 것이 정직한 자연이다. 작은 뜰에서 자연은 계절을 연출하고 철에 따라 작은 들꽃을 피우며 세월을 엮는다.

몇 해 전에 심은 으아리가 매화나무를 터전 삼아 아주 흐드러지게 자잘한 꽃을 피웠다. 그 향기, 하얀 꽃과 어우러져 작은 뜰은 축제의 아침처럼 황홀하다. 흰색이 얼마나 화려한 색인지. 아무 티가 없는 순백의 모습이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처럼 곱다.

주일이 지나면 제 아빠 엄마와 함께 할머니 집에 올 손녀들을 생각하니 맘이 설렌다. 지난겨울 이곳에 들렀을 때 큰 손녀는 꽃이 보고 싶다고 했다. 꽃을 보고 큰 손녀는 얼마나 좋아할까. 여기저기 곱게 핀 꽃들이 손녀를 기다리는 것 같다. 하루빨리 만나기를 애원하는 것처럼. 내 작은 뜰에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