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큰딸
아버지 큰딸
  • 김용례 <수필가>
  • 승인 2014.05.22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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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용례 <수필가>

아버지는 구 남매의 맏이셨다. 동생들을 업어 키우느라 가죽혁대가 오줌에 절어 끊어졌다고 하셨다. 당신 자식들은 고생시키지 않으려고 3남매만 두셨다. 그런데 큰 딸인 내가 결혼하여 힘든 시기가 있었다.

공무원인 남편 월급으로는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 수입품 가게를 했다. 장사를 시작하고 쉬는 날 없이 바쁘게 지냈다. 몇 달 만에 쉬는 정월 초하루에 친정엘 갔다. 아버지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하고 “어이구 이놈 자식 왔구나.” 하시더니 욕실로 들어가셨다. 한참 동안 물 내려가는 소리만 들렸다. 욕실에서 나오신 아버지 얼굴은 진분홍색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그날 붉어진 얼굴이 떠올라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나는 한 번 골이 나면 아무도 못 말리는 왕고집 쟁이었다. 튼튼하게 자라지도 못했고 공부도 잘하지 못했다. 결혼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했다. 아버지에게 조금이나마 기쁨을 드린 거라면 우리 아이들을 안겨 드렸던 날이지 싶다. 아버지에게 우리 애들은 첫 손자였다.

세상의 애들이라곤 당신 손자, 손녀만 보이셨던 분이다. 그 예뻐하던 손녀딸이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운동장에서 넘어져 다리를 다친 일이 있었다. 딸아이의 학교는 집에서 차로 40분 거리였다. 일을 하고 있던 나로서는 빨리 갈 수가 없어 아이 학교 근처에 살고 계신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다. 내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수술을 하고 있었다. 나는 아이의 다리가 온전치 못할까 봐 엉엉 울었다. 무릎을 스물다섯 바늘이나 꿰맸지만, 인대에는 이상이 없다는 의사 선생님 말씀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버지는 아픈 손녀?릿� 일 하다말고 달려와 울고 있는 당신 딸인 내가 더 아프셨나 보다. “조심하지. 에미 속상하잖아”라고 손녀딸을 나무라셨다. 장사하는 것도 속상한데 손녀딸이 다쳐 속상해하는 큰딸이 안쓰러우셨던 것이다. 아버지는 병원 복도에서 우시고, 나는 붕대를 칭칭 감고 있는 딸아이의 다리를 붙들고 울고, 내 딸은 우는 엄마에게 미안하다며 울었다.

시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큰딸의 안부가 궁금해도 전화 한 번 편안하게 못 하셨다. 내가 전화를 드리면 목소리부터 살피셨다. 가라앉은 목소리면 무슨 일이 있나 조심스럽게 물으시고 목소리가 밝으면 아픈 데는 없는지, 밥은 잘 먹는지 안부 챙기기에 바쁘셨다. 쉰이 넘은 딸도 아버지에게는 물가에 내 놓은 아이인가 보다. 돌아보면 나는 아버지 가슴에 깊이 박힌 옹이다. 허물어져 가는 성처럼 하루하루 쇠락해져 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볼 뿐이다.

부모는 자식에게 무엇인가. 고약한 짝사랑인가. 자식은 부모님의 사랑으로 뼈가 굵어지고 살이 붙고 한숨과, 걱정과, 눈물로 철이 든다. 이 못난 큰딸 때문에 흘리는 아버지의 눈물을 여러 번 보았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도 한참 후에 아버지의 눈물을 알았다. 자식들은 부모님한테 다 아픈 손가락이라지만, 할머니 할아버지가 키운 나는 우리 아버지한테 다른 자식들보다 유독 더 아픈 손가락이다.

바쁜 일도 마무리되었고 오월의 이 푸른 계절, 꽃을 좋아하시는 부모님 모시고 가까운 수목원에 다녀와야겠다.

아버지, 지금은 아무 걱정 없이 편안합니다. 큰딸 걱정은 그만 하세요. 아버지, 아버지 딸이어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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