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도 덜도 말고 오늘만 같아라
더도 덜도 말고 오늘만 같아라
  • 김낙춘 <충북대학교 명예교수·건축가>
  • 승인 2014.05.20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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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김낙춘 <충북대학교 명예교수·건축가>

이른 아침 동창을 밝힌 하얀 햇살이 방안에 가득하다.  

야(夜)밤. 밤의 소리(sound of midnight)를 들으며 단잠에 취한다. 여느 때와 같이 기나긴 밤으로의 여정을 마치고 나면 밤이 낮을 따르듯 어김없이 찾아든 새날을 맞는다.

창문을 여니 여명(黎明)에 깨어난 촉촉한 아침이 얼굴에 휘감긴다. 밤새 잎을 키운 여린 나뭇잎의 때깔이 곱고 싱그럽다. 소리 없이 불어오는 잔잔한 실바람에 흔들리며 곁으로 다가온 나뭇잎이 고개를 들어 눈을 맞춘다.

곧이어 맑고 밝은 볕이 쏟아지면 지난 한(寒)겨울 응달진 검붉은 동토(凍土)에 씨앗을 숨긴 야생화가 해맑은 얼굴을 드러낼 것이다. 차가운 바람에 묻어온 꽃씨는 거주지를 옮겨 양지(陽地)에 터를 잡는다. 지난겨울 모진 혹한과 인고를 견뎌낸 그들은 머지않아 아름다운 꽃을 피울 것이다.

‘Less is More’ (덜 한 것이 더 한 것이다). 적든지 작든지 많을 수록 풍부하고 좋다는 의미를 뜻하는 말뜻이다. 금세기 건축계의 거장(巨匠) 건축가 미스 반 델 로헤(Mies van del Rohe)의 말이다. 간결하고 명료한 것은 아름답다. 아름다움이 지녀야 할 덕목이기도 하다.

차디찬 밤 기온에 나뭇잎에 움츠리고 머물렀던 아침이슬이 대지에 흘러내려 이리저리 나뒹근다. 가지런히 누워 있던 잔디가 훌쩍 키를 키운다.

낮은 돌담장에 기대어 이리저리 뻗어난 넝쿨장미 나뭇가지 마디마디에 줄줄이 빨강 꽃을 피웠다. 온통 붉다. 꽃 중에는 단연 장미꽃이 으뜸임을 자랑한다.

여러 갈래의 가늘고 엷은 줄기 잎을 가지런히 피운 붓꽃은 진한 꽃물을 담고 있다. 그의 곁을 지나치며 살포시 건드리면 옷자락에 꽃물이 스며든다. 자연과의 연(緣)을 맺는 연정(戀情)에 젖어든다.

한여름 내내 꽃 마당에 밝은 햇살이 쏟아지면 나무와 꽃 무리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앞다투어가며 자신들의 아름다움을 뽐낼 것이다. 앵두나무줄기 마디에 맺혀 있는 아기 앵두가 볼을 붉히는 여름이 서서히 익어간다. 이내 어디에서인가 날아든 벌과 나비가 꽃 무리와 어울리며 한여름 내내 분주하게 이집저집 옮겨가며 맛있는 꽃 밥을 즐긴다. 성찬(聖餐)의 대가로 열매를 맺어준다.

석화(石花)를 피운 돌(水石)틈에 뿌리를 감춘 풍란(風蘭)이 은은한 천연의 내음을 뿜어낸다. 아름다움에는 향기가 있어 좋다. 가슴에 스며든 꽃 향이 감미롭다. 꽃 향에 취한다. 말끔하게 단장된 작은 꽃 마당에 어우러진 꽃들이 자신들만의 맵시와 자태를 내보이며 뽐내기 경쟁을 시작한다. 오랫동안 이어져 온 자연의 향연이다. 부쩍부쩍 커가는 나무와 함께 어우러진 아름다운 꽃들이 만개하면 그들만의 잔치가 무르익는다.

높고 푸른 하늘 아래 코스모스가 피어나고 들녘에 벼 이삭이 고개를 숙이면 풍요로운 가을을 얻는다. 겨울이 오기까지 자연과 함께 하는 우리 모두의 축제가 해마다 이어진다.

천혜의 아름다운 자연은 우리 인간이 아는 것 그 이상의 그 무언가를 주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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