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지고
꽃은 지고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4.05.19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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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사람들이 유난히 봄을 짧다고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십중팔구는 봄에 피는 꽃 때문일 것이다. 봄의 물리적인 시간은 다른 계절과 별반 다를 게 없지만, 사람들은 꽃이 피면 봄이 왔다고 생각하고, 꽃이 지면 봄이 갔다고 느끼는 경향이 강하다. 결국 봄이 다 가기도 전에 꽃은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당(唐)의 시인 이상은(李商隱)도 떨어진 꽃잎을 보고 봄이 간다고 느낀 것은 마찬가지였다.

◈ 낙화(落花)

高閣客竟去,(고각객경거) 높은 누각엔 손님들 마침내 떠나고

小園花亂飛.(소원화난비) 작은 동산에는 꽃이 어지러이 날도다

參差連曲陌,(삼차련곡맥) 이리저리 날다가 굽은 밭두렁에 닿았고

迢遞送斜暉 .(초체송사휘) 멀리까지 날아가 지는 햇빛에 실려 가누나

腸斷未忍掃,(장단미인소) 창자는 끊어질 듯 아파서 꽃잎 차마 다 쓸어내지 못하고

眼穿仍欲歸.(안천잉욕귀) 눈은 뚫어질 듯 바라보건만 꽃은 여전히 곧 지려 하누나

芳心向春盡,(방심향춘진) 꽃다운 마음은 봄을 향해 다했는데

所得是沾衣.(소득시첨의) 얻은 바는 곧 눈물에 젖은 옷이로세

 

※ 시인은 봄을 즐기는 중이었다. 높은 누대에서 여러 손님들과 잔치를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잔치가 끝나고 손님들은 각자 제 갈 곳으로 떠나가 버렸다. 잔치야 또 열 수도 있고, 그러면 손님들은 다시 모여 들 것이다. 그러나 단 한 가지 떠나고 나면, 돌아오지 않을 손님이 있었으니, 잔치의 주빈(主賓)인 봄꽃이 바로 그것이다. 아담하게 가꾸어 놓은 동산에 가득 피어났던 봄꽃들이 마치 높은 누각의 잔치가 끝나고 돌아가는 손님이라도 된 듯이, 떨어져 어지럽게 날리는가 싶더니, 결국에는 동산 밖으로 떠나 가 버렸다.

봄은 아직 채 가지 않았지만, 잔치의 주인공인 꽃이 떨어져서 떠나갔으므로, 봄이로되 봄 같지가 않은 것이다. 아쉬움을 떨치지 못한 시인의 눈은 떠나가는 꽃잎의 자취를 뒤쫓지 않을 수 없었다. 꽃잎은 여기저기 흩날리다가(參差) 구불구불 밭고랑이 나 있는 외진 곳까지 이어졌고, 마침내는 멀리 지는 해에 실려 아득히 보이지 않는 곳으로 보내지고 말았다. 먼 곳을 응시하던 시인의 시선은 다시 자기 주변으로 돌아왔다.

잔치가 열렸던 누대 근처에 떨어진 꽃잎을 쓸어 내야 하지만, 아직은 차마 그럴 수가 없다. 애가 끊어지려 하기 때문이다. 눈을 치켜뜨고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지만, 꽃은 여전히 곧 돌아갈 태세 그대로이다. 아직 남아 있는 꽃조차도 떠나가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임을 직감한 시인의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봄꽃처럼 싱그러웠던 시인의 마음은 봄과 함께 모두 사그러들어 버렸고, 시인의 손에는, 아쉬움에 흘린 눈물로 젖어버린 옷만이 들려져 있었다. 봄꽃을 보내는 애틋함을 섬세한 감각으로 그려낸 시인의 솜씨가 참으로 탁월하다.

봄은 꽃과 함께 왔다가 꽃과 함께 떠나간다. 꽃 때문에 즐겁고 화려했던 봄은, 꽃 때문에 슬프고 스산하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낙화(落花)를 슬퍼할 이유는 없다. 꽃은 지고 마는 것이 아니고, 지어야 다시 피는 것을 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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