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어안다
끌어안다
  • 안희자 <수필가>
  • 승인 2014.05.19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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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안희자 <수필가>

정오쯤이면 장미꽃이 만발한 아파트 뒷길을 지나 학교로 향한다. 요즈음 하루도 빼놓을 수 없는 일과 중 하나이며 즐거움이 되었다. 어느새 교문 앞이 왁자지껄하더니 아이들이 몰려나온다. 그때 일찍 나와서 기다리고 있던 엄마들은 그 작은 아이들을 어미닭이 알을 품듯 가슴에 품어 안는다. 그 모습이 보기 좋다.

나도 그들 무리에 섞여 아이를 찾는다. 올해 초등학생이 된 외손자 마중을 하기 위해서다.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몰려나오면 그놈이 그놈인 듯싶은데 아이가 먼저 알아채고 달려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웃고 있다. 반가움의 미소일 것이다. 처음 학교생활로 접어든 아이가 무사한 하루를 보냈으니 얼마나 대견한 일인가. 나도 꼬옥 껴안아준다. 세상 모든 어머니들의 마음이 그렇지 않을까.

나는 아이가 유치원 다닐 때부터 그렇게 매일 만나러 갔다. 시간에 쫓기고 힘에 부쳐도 아이가 귀가할 때면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달떴다. 전에 느껴 보지 못한 새로운 기분이었다. 어떤 이는 손주 키워주느니 일하는 게 속이 편하다고 하지만 나는 참 보람 있는 시간이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유치원 승합차에서 내리면 쪼르르 달려와 가방을 땅에 팽개치고 내 품에 안겼었다. 그 자그마한 것이 얼마나 귀엽던지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고 보니 아이나 어른이나 언어로 소통하는 것보다 서로 껴안아줄 때 믿음과 사랑이 더 깊어지나 보다.

처음 맡아 기를 땐 올바른 아이로 키워 내리라 다짐했다. 동화책을 보는 것도, 먹는 것도, 심지어 눈에 거슬리게 행동하는 것조차도 내 방식대로 고집하며 강요했었다. 더러는 친구와 비교하며 다그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아이가 시든 꽃처럼 풀이 죽었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안아주는 것이 정서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후로 나는 아이가 무슨 일을 할 때마다 칭찬하고 껴안아주었다. 그러자 아이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소통할 수 있었다. 가슴과 가슴으로 느끼는 사랑에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아이에게 너무나 큰 욕심을 부렸던 것 같아 미안했다.  

지난 가을에 큰딸이 둘째아이를 출산했다. 분만 후 회복실에 누워있는 산모의 가슴 위에 간호사가 하얀 강보에 쌓인 갓난아기를 살포시 엎어 놓았다. 뱃속에 고이고이 품어 산고를 겪어낸 어미와 새 생명 아기의 첫 만남의 순간이었다. 어미와 아기가 심장의 박동소리를 가슴으로 느끼며 끌어안은 그 순간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모습일 것이다. 환희의 순간, 고것이 얼마나 예쁘던지 거기 꽃 한 송이 피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딸아이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것은 아파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의 눈물이었을 것이다. 나는 딸아이에게 “우리 딸 장하구나. 어미가 되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인 게야.” 눈물을 닦아주었다. 나는 그날 딸아이가 한껏 성숙한 여인으로 느껴져 살며시 안아주었다.

끌어안는다는 건 가슴으로 나누는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서로의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 아름답고 소중한 시간인 것이다.

봄날 오후, 손자를 마중하며 사랑을 나누는 이 행복이 오래 머물러주기를 소망해 본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은 행복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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