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풍경
소소한 풍경
  • 하은아 <충북중앙도서관 사서>
  • 승인 2014.05.1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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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권하는 행복한 책읽기
하은아 <충북중앙도서관 사서>

짧지 않은 삶을 살아온 동안에 숱하게 많은 당혹스러운 순간들이 있었다. 대부분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을 때다. 숙제를 내야 하는 날 집에서 가져오지 않았던 일, 발표할 자료가 바뀌었던 일, 뜻밖에 장소에서 뜻밖의 사람을 만나는 일 등 얼굴을 붉게 만드는 일들이 종종 발생했다. 그럼에도, 가장 당혹스럽게 느끼는 순간은 따로 있다. 아니 어쩌면 당혹스럽다는 표현은 적당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순간들은 책을 읽으면서 발생한다. 자못 어려운 내용의 책을 읽을 땐 뜻 모를 단어들이 나를 괴롭혀, 미천한 내 지식에 당혹스럽다. 색다른 소재의 소설책을 보아도 그러하다.

생경한 세상을 만난 것 같아 좋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 자신이 당혹스럽다. 그러면 책을 읽다가 주위를 살피게 된다. 책을 읽다가 마주한 사실들에 놀라 남들이 볼까 봐 무의식적으로 주위를 돌아보는 것이다. 그리곤 멋쩍어지고 내 상식이 세련되어 보이지 않아 혼자 얼굴을 붉힌다.

박범신 작가의 신작 ‘소소한 풍경’(박범신 저·자음과 모음)을 찾아 읽었을 때도 그런 순간이었다. 플롯 없는 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 소설가와 그의 제자 ㄱ, 그리고 ㄱ의 사람들 ㄴ과 ㄷ이 등장인물로 나온다. 소설인데 플롯이 없다는 설정 자체가 당혹스럽다.

그럼에도 ‘소소한 풍경’은 저자의 전작 ‘은교’에서 꿈꾸어진 사랑이 완성된 사랑으로 표현된 느낌이다. 사랑이란 단어로 표현하는 데 있어 망설여지기도 하지만 소설 속 주인공 ㄱ, ㄴ, ㄷ이 하나의 완성체 같은 느낌이다. 독립체로서 완전하지 못했던 그들이 함께여서 완성되었다가 소진되어 없어진다. 먼지가 사라지는 멸진의 꿈을 꾸는 ㄴ처럼 아이러니하다.

책을 덮은 후에도 머릿속이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다. 책을 읽었지만, 사진집을 본 것처럼 이미지들이 가득하다. 선인장, 배롱나무, 포도밭 그리고 우물. ㄱ의 뒷모습과 더플백을 맨 ㄴ이 꽃길을 걷는 모습도 눈에 선하다. 그리고 저 멀리 ㄷ이 종종걸음으로 쫓아온다. “자기들끼리만… 너무해요.”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딱 한 단어로 이 책을 표현한다면 사랑이라 하겠다. 그럼에도 그리 표현하기엔 아쉬움이 남는다. 봉인된 비밀을 열고자 했다던 저자의 말처럼 나도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본 기분이다. 그러니 지금도 혼란스럽다. 작가의 말을 좀 더 듣고 싶다. 탈고가 끝난 소설의 내용은 더 이상 저자의 것이 아니라 하지만 생각할수록 궁금해지는 책이다.

그러니 저자에게 물어봐야겠다. 소소하지만 소소하지 않은 그런 풍경들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들어야겠다.

충북중앙도서관에서 열리는 박범신 작가강연회에서 나는 그가 풀어놓을 비밀을 몰래 훔쳐볼 것이다. 5월 24일 그날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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