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타일과 박애(博愛)
한국스타일과 박애(博愛)
  • 박상옥 <다정갤러리 대표·시인>
  • 승인 2014.05.13 20: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타임즈 포럼

박상옥 <다정갤러리 대표·시인>

미사를 보는데 성당의 천장이 무너졌습니다. 기적적으로 인명피해가 없었답니다.

그 성당을 방문해 보니 건물의 몸체는 그냥 두고 천장 공사를 새로 하기 위해 안팎으로 거푸집 공사를 하는데 천장이 무너진 것은 철근을 넣지 않았기 때문. 이번에는 절대 무너지지 않는 ‘한국스타일’로 철근을 넣어서 지붕을 올린다며 버마의 주교님이 자랑을 하더랍니다.

형님이신 장인산 주임신부를 깜짝 방문한 장인남 주교님 소식에 성당이 그득합니다.

주교님은 얼마 전에 다녀왔던 버마에서 보았다는 천장 없는 성당건물을 말씀하십니다. 툭하면 집들이 무너지는 버마에서 튼튼함으로 일컬어지는 한국건물을 말씀하시는 장인남 주교님의 은은한 강론. 화려할수록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말과의 차이에서 박애(博愛)를 느꼈습니다.

네 탓 내 탓 당신 탓 그들 탓…. 아닙니다.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일은 대한민국 모두의 책임입니다. 무책임한 책임자 원인제공자, 그 누구는 누구의 아버지요 어머니요 가족입니다. 공직이나 공적인 업무를 띤다고 해서 사람이 다른 것이 절대 아닙니다. 다만 우리에게 박애가 없기 때문입니다.

박애는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만 소중한 게 아니고, 내 가족만, 우리 마을만 우리 단체만 소중한 게 아니라 모든 생명을 아우르는 사랑입니다. 실천을 할 수 있는 손은 박애입니다.

정신을 가다듬는 종교도, 안정과 평화를 추구하는 정치의 뿌리도 박애여야 합니다.

손이나 발은 때때로 정신보다 위대합니다. 대통령의 정신이 높다지만, 차가운 물속에 뛰어들어 생명을 구하는 잠수부는 때때로 그 어떤 직책보다 위대합니다.

‘초기 응급상황에 따른 빠른 후속처치로 안정 되찾음’ 세월호 사건 이후에 간절히 기다리던 이 소식은 이건희 회장의 심근경색 발병이후 소식입니다.

분초를 다투는 심근경색이 의료진의 발 빠른 대처로 위기를 넘겼다는데, 분초를 다투는 세월호 인명구조는 왜 실패 했는지. 이제는 즉흥적이고 격한 감정에 치우칠 단계가 지나갑니다.

손과 발로 실천할 박애의 시기를 놓치고 머리로부터 나오는 현명한 생각과 엄격한 잣대로 1차 책임자나 원인제공자를 철저히 수사하고 처벌해야 합니다. 죄의식과 죄가 되는 과정은 때때로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것이 너의 죄다’라고 일러주기 전엔 죄가 아니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선장이나 선원들은 선상탈출이 죄가 된다는 걸 몰랐습니다. 어떻게든 약삭빠를수록 더 잘 산다는 경제성장을 달려오느라 모두가 잃어버렸습니다. 생명 있으므로 가장 소중한 ‘博愛(박애)’를 잃어버렸습니다.

부모가 죽으면 산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했습니다. 자식을 바다에 묻고 가슴에 묻었으니 사는 내내 밀물처럼 썰물처럼 닥치는 설움을 절절히 살아낼 숙제가 남았습니다. 그런데 고통이 심하다고, 불안이 심하다고 유가족 곁에서 우리는 서로 네 탓과 내 탓으로 아수라장입니다. 책임공방까지 더해진 아수라장 진흙탕에서 참회와 자비의 꽃이 피길 기도합니다. 몇 백 년 후손의 머릿속에서도 ‘슬픔의 날’ 이 경종(警鐘)의 연꽃으로 피어나길 기도합니다.

호암지 산책길에 누군가 흘렸을 액체에 달리던 강아지가 미끄러집니다. 주변에 마른풀로 문지르고 돌아오는 주일저녁. 사제나 사람에게 눈도장을 찍기 위해 성당을 다녔나 싶은 마음을 돌아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