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 되찾기
지난 봄 되찾기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4.05.12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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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당(唐)의 시인 이백(李白)은 일찍이 그의 ‘春夜宴桃李園序(춘야연도리원서)’라는 글에서 하늘과 땅이라는 것은 만물이 잠깐 묵었다 가는 여관이고, 빛과 그늘이라는 것은 백대를 걸쳐 지나가는 나그네이다(夫天地者萬物之逆旅 光陰者百代之過客)라고 설파한 바 있다. 그의 말이 아니더라도 세월은 참으로 꾸준하고 참으로 무심하다.

봄도 예외가 아니다. 때가 되면 어김없이 왔다가, 때가 되면 어김없이 가는 것이다. 끝도 모를 옛날부터 그래왔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그럴 것이다. 사람들 모두 이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아쉬움마저 떨칠 수는 없다. 당(唐)의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가는 봄이 아쉬워 그것을 찾아 나서기까지 하였다.



◈ 대림사 복숭아꽃(大林寺桃花)

人間四月芳菲盡(인간사월방비진) : 인간세상 4월은 꽃다운 풀이 다 지는데

山寺桃花始盛開(산사도화시성개) : 산사의 복숭아꽃은 이제야 활짝 피었구나.

長恨春歸無覓處(장한춘귀무멱처) : 가버린 봄 찾을 곳 없어 길이 탄식했는데

不知轉入此中來(부지전입차중내) : 나도 모르게 이리저리 다니다가 이곳에 왔소.

 

※ 음력 4월이면 봄은 이미 다 지난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 향기로운 꽃들은 거의 다 지고 만다. 그런데 인간 세상과 다른 곳이 있다. 산 속의 절에는 복숭아꽃이 이제 막 피어나고 있으니 봄이 간 것이 아니라, 봄이 이제 오는 것이다. 시인은 떠난 봄을 아쉬워하던 끝에 거꾸로 봄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그래서 산으로 들어 간 것이고, 산 속의 절에서 봄이 오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산 속은 원래 계절이 늦게 오는 게 당연하지만 시인의 눈에는 이것이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사실 시인은 떠나간 봄을 뒤쫓아가 그것을 찾을 생각이었지만, 도무지 찾을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깊은 시름에 빠져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다가 이곳저곳을 떠돌다 자기도 모르게 어느 산의 절에 이르게 되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도무지 만날 수 없을 것 같던, 떠나간 봄을 만나게 된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는 이미 져버린 복숭아꽃이 이곳 산 속 절에서는 이제 피기 시작하고 있으니, 여긴 봄이 떠난 게 아니라, 봄이 오고 있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산 속이라 봄이 늦게 온 것이고, 이는 사람 사는 세상에서 이미 떠난 봄과는 다른 것임을 모를 리 없지만, 시인은 짐짓 떠난 봄을 찾기라도 한 것처럼 반가워한다. 이러한 시인의 발상은 얼핏 지난 세월을 거슬러 올라 갈 수 있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 같지만, 실은 지나간 시간을 돌이킬 수 없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에둘러 토로한 것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지난 봄을 다시 찾는 것은 참으로 부질없는 일이다. 그러나 아쉬워하지도 말아야 할 일은 아니다. 아쉬움은 사람들에게 소중한 감정인만큼 그 아쉬움을 적절히 표현하는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 그것도 운치 있고 기발하다면 금상첨화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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