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예찬과 저항의 심리학
청춘예찬과 저항의 심리학
  • 양철기 <충북학생외국어교육원 연구사·박사·교육심
  • 승인 2014.05.12 19: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심리학으로 보는 세상만사

양철기 <충북학생외국어교육원 연구사·박사·교육심리>

‘청춘! 너의 두 손을 가슴에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 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끓는 피에 뛰노는 심장은 거선(巨船)의 기관(汽罐)같이 힘 있다. 이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꾸며 내려온 동력은 바로 이것이다. 청춘의 피가 뜨거운지라, 인간의 동산에는 사랑의 풀이 돋고, 이상(理想)의 꽃이 피고, 희망이 놀고 뜨고, 열락(悅樂)의 새가 운다. 이상은 실로 인간의 부패를 방지하는 소금이라 할지니, 인생에 가치를 주는 원질(原質)이 되는 것이다. 이상! 빛나는 귀중한 이상, 이것은 청춘의 누리는 바 특권이다.’

뜬금없이 학창시절 국어책에서 본 민태원(1894~1935)의 청춘예찬이 생각나는 요즘이다.

1961년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1933~1984)은 충격적인 실험을 진행한다.

시간당 4.5달러로 자원자를 모집하여 실험의 진짜 목적은 알려주지 않고 일반인 참가자들에게 학습자를 처벌하는 역할을 맡긴다. 일반인 참가자는 학습자(실험자 쪽의 사람들로 일부러 답을 틀리게 말한다)들이 문제를 틀릴 때마다 15볼트의 전압에서부터 5볼트씩 높여 전기충격의 강도를 높여가야 한다. 학습자는 실제로 전기충격을 느끼지는 않지만, 일반인 참가자 눈앞에서 전기충격을 받을 때마다 일부러 고통스러운 듯 몸부림친다. 실험이 진행되어감에 따라 일반인 참가자는 실험이라고 해도 이렇게 해도 되는지 갈등으로 괴로워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때마다 흰 가운을 입은 실험주도자가 근엄한 목소리로 “계속해 주십시오”라는 지시를 한다.

도중에 실험을 그만둘 선택권이 있음에도 일반인 참가자 40명 전원이 300볼트까지 전기충격을 주었으며, 450볼트(실제로 주어졌다면 사망에 이를 강도)까지 도달한 참가자는 40명 중 27명이었다.

붉은 원숭이에게 비슷한 상황을 만들고 버튼을 누르면 유리 안의 동료 원숭이가 고통을 느낌과 통시에 사과가 손에 주어졌다. 실험실에는 붉은 원숭이와 스위치만 있고 지시자는 없었다. 붉은 원숭이는 15일 동안 스위치를 누르지 않았으며, 15일간 굶었다.

밀그램 실험과 똑같은 상황에서 다른 실험을 한다. 일반인 참가자가 버튼을 누르기 전 실험자 측에서 일반인 참가자로 위장시킨 한 사람이 버튼 누르기를 거부한다. 그리고 다른 일반인 참가자 차례가 온다. 이때 40명 중 4명만이 끝까지 버튼을 눌렸다. 90%는 버튼 누르기(복종)를 거부했다.

권위에 대한 복종을 거부할 수 있는 상황은 붉은 원숭이 상황과 같이 권위자와 함께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이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복종을 거부할 수 있는 상황은 타인의 행동을 관찰했을 때 나타난다. 복종에 저항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무기는 타인의 행동을 보고 얻는 용기다. 함께일 때 복종을 거부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는 것이다. 혼자라면 감히 권위에 도전하지 못할 사람들이 함께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알면 권위에 도전할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 누군가 한 사람, 버튼 누르기를 거부한 그 사람, 그 사람이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이다.

이제 지금의 청춘들이 나서야 하지 않을까?

부당하게 집행되는 권력과 잘못된 권위가 일반 서민의 삶에 위해가 된다면 여기에 저항할 수 있어야 한다. 교사라면 초임교사가, 공무원이면 8급, 7급이, 회사원이면 신입사원이. 그들의 버튼 누르기를 거부하는 그 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대들은 청춘이니까. 또한, 그것은 청춘의 특권이니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