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숲에 서서
5월의 숲에 서서
  • 이효순 <수필가>
  • 승인 2014.05.11 19: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이효순 <수필가>

산책길 언덕에 아카시아 꽃이 하얗게 피었다.

잠시 오솔길에 서서 언덕을 바라본다. 숲 속 나무 사이로 보이는 작은 하늘은 꽃향기로 가득하다. 눈길을 옮겨보아도 5월의 숲은 온통 초록빛이다. 하얀 꽃과 달콤한 향기는 때 묻지 않은 자연 속에 더 싱그럽다. 아카시아 하얀 꽃송이에 세월과 친구, 고향집, 학교 길, 모두 조롱조롱 달린 것 같다.

초록빛 속의 흰색은 싱그러움을 더한다. 젊음처럼 싱싱한 초록의 숲을 바라보며 내 삶의 색은 지금 무슨 색일까 그런 생각에 잠시 잠긴다. 외모는 좀 바랬더라도 마음은 아직 젊으니 그냥 초록이고 싶다. 겉모습과 속마음이 다르니 그럴 수밖에 없다.

아카시아 꽃을 보니 오래전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가 내 옆에 다가오신 것 같다. 아버지는 아카시아 나무를 ‘명사구 나무’라고 부르셨다. 초여름이면 하얀 꽃핀 아카시아 꽃을 꺾어다 주셔서 나와 동생들은 냄새도 맡고 먹고 놀기도 했다. 땔감이 없던 겨울엔 아카시아 나무를 베어 땔감으로 대신했던 오래전 일들도 생각난다. 자식들에게 따뜻한 겨울을 보내기 위해 가시가 있던 나무도 마다하지 않고 베어오신 것이다. 인자하셨던 아버지는 5월이 되어 푸른 숲을 바라볼 때면 더 간절해진다.

언덕 오르는 한쪽엔 하얀 찔레꽃이 봉오릴 연다. 은은한 향기와 소박한 자태, 어머니의 냄새를 맡는다. 어머니는 가시고 계시지 않지만, 찔레꽃으로 내 곁에 계신 어머니를 본다. 요즘 아침마다 해 돋는 때에는 이 언덕에서 어머니를 만난다. 그때마다 어머니의 잔잔한 미소와 사랑 담긴 눈길이 노년의 초입에 접어든 나에게 서서히 다가온다. 찔레꽃 노래를 자주 부르시던 어머니 생각에 마음은 초록의 싱그러움 중에도 처연해진다.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 배고픈 날 가만히 따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먹었다오.’
 
5월은 가정의 달이라 분주하다. 오래전에 가신 두 분이 기억날 때면 그 싱싱한 푸른 숲에 서도 초록의 눈물이 볼을 타고 주르르 흐른다. 어머니란 말을 누가 이야기해도 목부터 싸해지는 것은 먼저 가신 어머니를 둔 사람들은 모두 같은 마음이리라. 살아계실 때 알지 못했던 것들을 자식을 키우며 조금씩 알아가지만, 부모님은 이미 세상에 계시지 않으니 후회해도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날마다 만나는 자연이 5월이 되면 더 진한 초록빛으로 숲을 이룬다. 노랑꽃핀 애기똥 풀이 더 선명하고 앙증스럽다. 그 모습을 보며 그 숲을 지날 때마다 마음에 쌓인 때 묻은 생각은 초록으로 깨끗이 씻는다. 찌꺼기가 남지 않도록.

발자국을 뗄 때마다 숲은 말없이 따라오며 속삭인다. 마음의 작은 것을 다 버리고 나와 함께 걷자고. 지난 이른 봄 벚꽃이 떨어져 숲길을 하얗게 덮던 날 휴대전화기에 그 모습을 담았다. 파카 주머니에서 휴대전화기를 꺼내 이미지를 검색한다. 눈처럼 하얀 길이었다. 엊그제 같은데 벌써 주변이 초록으로 가득하다. 빠른 것은 세월이다.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 같다. 자연 속에서 시작하는 하루는 참 감사하고 행복하다. 숲은 욕심도 없고 화도 내지 않는다.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는 5월의 숲. 깨끗하다. 그리고 싱그럽다. 마시고 싶다. 푸른 새소리, 푸른 바람, 푸른 공기 모두를 부모님께 전하고 싶다. 5월의 숲에 서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