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정선옥 <음성도서관장>
  • 승인 2014.05.08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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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권하는 행복한 책읽기
정선옥 <음성도서관장>

얼마 전 군대에 있는 조카에게 책을 선물했다.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와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그리고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골랐다. 도서 선택은 이모의 개인적인 취향을 담았지만 조카가 삶의 지침서가 되는 좋은 책을 읽고 제대 후 이성과의 만남에 혜안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 작용했다. 대학에 다니면서 책을 거의 읽지 못했는데 이모 덕분에 책을 읽는다며 다음에 보내줄 책을 기대하고 있다.

조카에게 책을 보내면서 우리 집 책장에 꽂혀 있던 빛바랜 도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밀란 쿤데라 저·민음사)’을 다시 읽었다. 대학 때 이 책을 읽기보다는 전시용으로 겨드랑이에 끼고 자랑스럽게 걸어가곤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녀는 겨드랑이에 책을 끼고 거리를 산책하는 것을 즐겼다. 책은 그녀에게 19세기 멋쟁이들이 들고 다녔던 우아한 지팡이와도 같았다. 책을 통해 그녀는 남과 자기를 구분 지었다.’ 가난한 과부의 딸이며 시골 레스토랑의 종업원이었던 테레사에게 책은 희망이자 미래를 밝혀줄 한 줄기 빛과 같았다. 식당에서 우연히 만난 토마스가 읽고 있던 책 ‘안나 카레니나’는 테레사가 어제 읽던 책이었고, 도시에서 온 묵묵히 책만 읽던 눈빛과 지적인 모습의 토마스는 테레사를 영혼이 있는 세계로 데려다줄 운명의 남자가 된다.

이 책은 제목에서 오는 무게감과 두께로 읽기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토마스와 테레사, 사비나와 프란츠의 사랑이야기가 중심축을 이룬다. 돈후안적인 인물이며 이상주의자였던 토마스는 테레사에게 연민을 품게 되고, 테레사를 위해 의사라는 안정된 직업을 버리고 트럭 운전사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 지고지순한 사랑을 하게 된다. 시골에서 소박한 생활을 하는 토마스와 테레사는 서로를 의지하며 삶의 무거움과 가벼움을 넘어선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토마스의 연인이었던 사비나는 소설에서 자주 거론된 ‘보이는 것,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편협한 시선’인 키치의 세계를 싫어했지만 어느 순간 테레사와 토마스의 순수한 사랑을 부러워하며 키치의 세계를 인정한다. 사비나의 새로운 연인이었던 프란츠는 소련의 침공으로 혁명, 변화, 투쟁이 한창인 체코의 프라하를 동경하며 안정된 교수직을 버리고 혁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뛰어든다. 그렇게 네 사람은 각자 자신이 머물고 있던 삶에서 간절히 원했던 새로운 세상으로, 또는 원하지 않았으나 자연스럽게 또 다른 세상으로 흘러갔다.

내용의 큰 흐름은 사랑이야기이지만 프라하의 소용돌이 속 정치, 역사, 니체의 영원회귀사상까지 아우르는 묵직한 주제도 다루고 있다. ‘책은 도끼다’의 저자 박웅현은“이 책이 왠지 어렵고 부담스러웠다면 단 한 가지, 토마스와 테레사의 사랑만 기억해도 좋을 책입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결코 가볍지 않은 사랑이야기이니 말입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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