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복을 입는 까닭
제복을 입는 까닭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4.05.07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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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남자들끼리 이런 말을 자주한다. 아무리 젊잖은 분이라도, 아무리 사회지도층이라도 예비군복을 입혀놓으면 똑같다고. 아무데서나 눕고, 아무데서나 오줌 누고.

내가 기억하는 사건이 있다. 말죽거리 예비군훈련장에서 여교사가 하나 탔는데, 내릴 때 옷이 거의 엉망이 된 일이었다. 방송에까지 나왔으니 심각한 집단추행이었다. 그 분들 예비군복만 입혀놓지 않았으면 그러지 않았을 사람인데, 참으로 제복의 힘은 세다.

이것은 부정적인 예일 것이다. 중립적인 예는 군대에서 볼 수 있다. 계급이라는 엄정한 차별이 있지만, 훈련소에서 옷을 똑같이 입혀놓으면 모두 같아진다. 평등해지면서 그들은 동지의식도 느끼고 책임감도 느낀다.

이런 해석을 들은 적도 있다. 해병대 훈련소에서 다들 운동도 잘하고 나름 거친 척하는 사람들에게 똑같은 옷을 입혀놓으니, 서로가 서로를 무서워하더라는 이야기다. 건달은 검은 옷으로 자신들의 위세를 자랑하고, 돈 있는 사람은 명품으로 자신들의 부를 자랑하는데, 막상 제복을 입혀놓고 구별을 하지 않으니 피차간에 조심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교도소에서도 제복을 입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항공사 여직원의 제복은 패션의 완성이다. 우리나라 상황에서 여자로서 인물 좀 되고 키가 크면 항공사 승무원을 한 번쯤은 꿈꿔 본다. 해외여행도 자주하며 고급호텔에서 머물고, 면세점에서 화장품도 맘껏 살 수 있는 직업은 젊은 여인이 쉽게 포기할 수 있는 유혹이 아니다. 비행기 조종사의 제복도 멋있다. 최고의 전문기술을 지닌 기장이나 부기장이 두른 소매의 줄무늬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저렇게 멋있는 옷을 입고 한 번쯤 세계를 누려보고 싶은 생각은 건강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가져보았을 것이다.

경찰관이 멋있는 것도 제복 때문이다. 제복을 입은 그들 앞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눅이 든다. 사법권이 있다는 인식은 나중의 일이다. 그들의 수신호에 우리는 꼼짝달싹하지 못한다. 공연히 한 번 입어보고 싶다. 남들이 내 앞에서 어떻게 하나 보고 싶다.

소방사의 멋은 두툼한 옷만이 아니라 넓고 긴 모자에서도 느껴진다. 거기에 빨간 소방차까지 타면 모든 차들이 비켜준다. 싸이렌 소리를 울리면서 거리를 달릴 때, 어린이의 부러움은 극에 달한다.

해군의 전통은 흑백의 제복이다. 여름에는 하얗게, 겨울에는 검게 입는다. 특히 하얀 옷은 정말 눈에 확 띤다. <사관과 신사>라는 영화를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된다. 하얀 옷을 입은 그들의 매력은 미남 배우가 아니라도 절로 느껴진다.

해외의 크루즈에서는 선장과의 포토타임이 있다. 그것도 돈을 내면서 찍는다. 정복을 입은 선장과 함께 사진 찍는 것을 그들은 영광으로 여긴다. 그만큼 선장이라는 지위가 영예로운 자리임을 보여준다.

제복을 왜 입을까? 경찰관이라면 범죄예방을 위해서도 그렇고 권리행사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군인이라면 전투에 적당하기 위해서도 그렇지만 명령에 복종시키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이렇듯 제복은 권위와 속박이라는 양면적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여객선의 선원에게는 왜 제복을 입히는 걸까? 그것도 마찬가지로 험한 바다위에서 한편으로는 자부심을, 다른 한편으로는 의무감을 주기 위해서일 것이다. 제대로 된 제복을 입고도, 아니, 멋진 하얀 제복을 입고도 사람들은 책임을 방기할까? 사람은 옷을 입는 동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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