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게 묻다
바람에게 묻다
  • 김희숙 <수필가·산남유치원교사>
  • 승인 2014.05.06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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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희숙 <수필가·산남유치원교사>

창밖엔 어둠이 가득하다. 창문을 열고 어둠의 입자를 머금은 바람을 방안으로 가득 들였다. 고요와 어둠이 뒤엉킨 방안엔 적막감이 번진다. 그 아득하고 둔탁한 느낌이 한껏 몸에 스미게 한다. 그 느낌을 머리에서 가슴 저 밑으로 내려 보낸다. 싸~아 하다. 온 몸에 검은 색 물감을 푼 듯 먹먹하다. 

바람이 어둠을 밀어내기를 기다렸다. 어둠이 빛으로 바래지기 시작하자 난 청풍호수의 물 빛을 보러 무작정 나섰다. 나서고 싶을 때면 아무 생각 없이 일단 나서고 본다. 생각을 하다보면 나선다는 두려움에 갇혀 하루를 집에 갇혀 있게 된다. 고요하게 흐르는 물빛에 시선을 던진다. ‘삶이란 무엇이고 죽음이란 무엇인가? 사람들은 왜 공간과 시간의 분할을 하여 매듭지으려 하는가?’ 이런 저런 상념을 물빛에 실어 보내는데, 호수 표면을 간지르던 바람이 자꾸 등을 떠민다.  

바람을 타고 날아든 지난 시간의 기억을 안고 정방사에 올랐다. 신라 문무왕 2년(662년) 의상대사가 던진 지팡이가 멈추었던 곳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펴고자하는 정원스님의 뜻이 더해져 창건되었다는 정방사! 절은 금수산 정상에 가까운 지점의 암벽 아래 아슬아슬하게 자리잡고 있다.

기억 저편의 그날처럼 가파른 돌계단을 올랐다. 등산객과 관광객의 눈길을 제일 먼저 받았을 입구의 범종을 지나 원통보전 앞에 서서 산 아래를 아찔하게 굽어본다. 청풍호가 한눈에 들어온다. 눈을 드니 겹겹이 둘러싸인 산들이 동양화의 한 폭처럼 시야를 채운다. 바람은 내 온몸으로 부서져 들어온다. 나한전을 스쳐 해수관음보살에게 합장을 하고, 세상을 고요히 내려다보고 있는 지장보살상에 엎드렸다. 그들의 영혼이 좋은 곳으로 가도록 빌고 또 빌었다. 아직 못 다한 이야기들이 많은 나이들인데, 아니 아직 아무런 이야기도 펼쳐 놓기 전인 아이들인데……. 세월호를 휘돌았을 바람이 다시금 내 가슴 위를 아리게 맴돌고 있다.  

바람이 산사의 저녁 공양을 짓는 듯한 나무 타는 냄새를 코끝에 실어다 주었다. 바람이 흔들어 놓은 청아한 풍경 소리의 울림을 따라 하늘을 올려다본다. 쨍그랑 거리는 소리가 저녁하늘에 주황색 파문을 일으키고 있었다. 바람이 타전하는 소리에 애달픈 노을이 쨍그랑 쨍그랑 붉은 멍으로 피어올랐다.

절을 돌아 나오는 길, 원통보전에 걸린 유구필응(有求必應)(바라고 구하면 반드시 응답이 있다.)이라는 편액에 눈길이 닿았다. 화엄경에 나오는 이 글귀를 보며 다시 한 번 합장을 한다. 세월호안에 탑승했다가 바람이 된 모든 넋들이 부디 좋은 곳으로 가라고 다시금 구하고 기도해 본다. 원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갖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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