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님
왕자님
  • 이헌경 <음성대소초 사서교사>
  • 승인 2014.05.01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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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권하는 행복한 책읽기
이헌경 <음성대소초 사서교사>

검은 옷을 입은 글자들이 백지 위에 가지런히 앉아 날 기다리고 있었지만, 도무지 초점이 또렷해지지 않았다. 글을 읽어도 감동이 없었고 마음이 울리지 않았다. 무엇이 위로가 될까. 무엇이 힘이 될까. 세상에 하나뿐인 우리의 왕자, 공주님들. 그들을 기다리며 오랜만에 그림책을 펼쳤다.

그림책은 글과 그림이 함께 어우러지는 문학 작품이다. 다른 작품처럼 글이 단독 주인공이 되지 못한다. 글이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을 그림이 채워주고 혹은 그림 혼자서 이야기를 이끌어가기도 한다. 그림이 함께 있기에 이야기는 더욱 풍성해지고 깊어지는 맛이 있다. 원색 가득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그림 동화책이 전부인 것으로 알고 자란 내가 초등학교에 근무하면서 그림책을 만난 것은 놀라움과 함께 큰 행복이었다. 문뜩 이렇게 멋진 책들을 만나지 못하고 훌쩍 커버린 내 유년 시절이 안타깝기도 했다. 이제는 태어나서부터 그림책을 접하고 엄마가 읽어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는 우리 아이들은 정말 축복받은 존재임이 틀림없다.

어린이 책 전문 출판사인 시공주니어에서는 네버랜드 세계 걸작 그림책 시리즈를 기획해 세계 각국의 권위 있는 작가들의 좋은 작품들을 소개하여 큰 호응을 받고 있다. 국내 그림책 시장은 뒤늦게 활성화된 만큼 세계 걸작 시리즈처럼 그 구성이 아직까지 방대하지는 않지만, 출판사의 안목을 믿고 선택한다 해도 아쉬움이 없을 것 같다.

마음 한구석이 늘 허전한 도서 ‘왕자님(노석미 글/그림·시공주니어)’. 왕자님이라는 칭호가 주는 외로움을 힘겹게 견디고 있던 왕자님이 애벌레에서 번데기로 묵묵히 진화하는 나비에게 큰 위로를 얻고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나는 짧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우리의 옛이야기처럼 사건과 상황의 반복이 있는 것도 아니고 웃음을 자아낼 재미있는 요소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자아의 발견, 성장과 변화라는 우리 아이들이 겪고 고민하게 될 다분히 철학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다.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아이의 그림처럼 굵은 붓으로 간결하고 복잡하지 않은 색을 사용해 나비의 성장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 어린 독자를 위한 작가의 배려로 느껴진다.

왕자님이라면 세상에 대한 아쉬움이 없을 것만 같은데 깊은 고민과 외로움에 빠진 왕자님이라니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연이어 등장하는 코끼리 왕자님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기대어도 좋다고 작은 내 어깨라도 내어주고 싶어진다. 더욱이 파란색을 많이 사용하여 차분하면서도 외로움을 더욱 깊게 느껴지도록 하였다. 자신을 위로해 줄 그 무엇도 찾지 못하다 문뜩 아주 작은 애벌레를 보고 위안을 얻은 왕자님. 윌리엄 스타이그의 그림책 ‘아모스와 보리스’와 이솝 이야기 ‘사자와 생쥐’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덩치가 크건 작건 모습은 다르지만,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고 서로에게 힘이 될 수 있다는 것, 작은 움직임으로 큰 기적을 ‘왕자님’을 통해 다시 한 번 기대해 본다.

36쪽 내외의 짧은 이야기이지만 이 속에 담긴 글과 그림은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이끌어 낸다. 우리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한 명 한 명이 더 없이 소중하며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소중한 존재이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혹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 고민하는 우리 아이를 발견한다면 가볍게 넘겨볼 수 있는 이 한 권의 그림책을 건네 보는 건 어떨까. 넌 우리 모두에게 아주 소중한 왕자, 공주님이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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