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의 <변신> 과 ‘슬픔의 날’
카프카의 <변신> 과 ‘슬픔의 날’
  • 박상옥 <다정갤러리 대표·시인>
  • 승인 2014.04.29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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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박상옥 <다정갤러리 대표·시인>

어느 날 아침 나는 괴물이 되었습니다. 나의 방에 나 대신 괴물이 있음을 보고 경악하는 가족들. 직장상사는 비명을 지르며 꽁무니가 빠지게 도망가고, 아버지는 지팡이를 휘둘러 피의 상처를 입히며 나를 방에 가둡니다. 실신한 어머니. 어머니를 위해 여동생은 괴물로 변한 나를 감추려고 합니다.

평범한 일상이 갑자기 종말을 맞이하는 것은 갑작스럽게 출현한 괴물 때문입니다. 끔찍한 괴물이지만 처음엔 어떻게 할 건지 대책도 세우고 입맛에 맛는 음식을 주어 봅니다. 그러나 그뿐, 시간이 지나면서 괴물의 존재는 귀찮고 부담스럽습니다. 드디어 “우리는 어떻게든 저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해요.”라는 여동생의 말. “자, 이제 지난일은 그만 묻어 두자. 이제는 나도 생각해 줘야지.”라는 아버지의 말. 식모 할멈이 귀찮은 쓰레기 치우듯 말라죽은 괴물을 치워 버립니다.

프란츠 카프카의 대표작 <변신>입니다. 노벨문학상의 작가 G.마르케스는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읽고서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세월호 참사에 맞추어 고인이 되었습니다. <변신>에서의 괴물이 G.마르케스에게 노벨상을 안겼다면, <변신>은 다시 시공간을 초월해 오늘 우리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거대한 괴물입니다. 꽁지가 빠지게 도망간 선원 모두는 직장상사이며, 괴물을 인정하고 싶지 않거나 권위 실추를 생각하는 무능한 아버지는 정부이며, 실신하여 현실을 부정하는 어머니는 참사를 당한 가족이며, 그나마 조금 이성적으로 참혹한 사건에 대응하는 여동생이나 식모는, 우울한 일상에 놓인 우리 모두입니다. 괴물은 오래 전부터 우리들 마음속에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어떻게 괴물이 탄생했는지 추측이나 물증도 있지만, 그림처럼 분명한 과정과 재발방지는 없습니다. <변신>에서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괴물처럼, 참사괴물은 오늘의 경악.관심. 배려 속에 한껏 누리다가, 귀찮아지고 외면당하면서 서서히 잊혀질 것입니다.

삼풍백화점(95.6.29.502명).대구지하철(2003.2.18.192명).성수대교(94.10.21.32명). 대한항공비행기 괌 추락(97.8.6.226명)처럼 이름이 다른 괴물도 있지만, 서해 훼리호 침몰(93.10.10.292명)처럼 상황이나 얼굴이 꼭 닮은 괴물도 있습니다. 생때 같은 목숨을 숱하게 잡아먹은 괴물은, 우리의 방심한 틈을 비집고 또 다시 나타날 것입니다. 슬픔 중에도 우리를 더욱 두렵고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괴물이 곧 잊혀지리라는 것입니다.

슬픔에는 정화의 능력이 있답니다. 이제라도 ‘슬픔의 날’을 정해야 합니다. 해마다 4월 16일은 ‘슬픔의 날’이 되어 우리들 마음을 정화하고 정부 부처를 정화하고 이 사회 온갖 부조리를 정화하는 ‘안전연습의 날’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이나 사회, 강이나 바다, 건물 배 비행기 어디나 괴물이 좋아하는 음습한 곳엔 창을 내고 환기를 시키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세월호가 침몰한 자리에 영원히 내려지지 않는 ‘슬픔의 날’이란 깃발이 펄럭이게 해야 합니다. 경제선진을 향해 달려오는 속도 때문에 놓쳤던 안전선진의 손을 ‘슬픔의 날’로 꽉 다잡아야 합니다. 슬픔에는 정화의 능력이 있으니까. 세월호 참사가 안전한 나라로 가는 전환점이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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