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남윤철선생의 거룩한 희생
고 남윤철선생의 거룩한 희생
  • 김중길 <청주적십자봉사회>
  • 승인 2014.04.2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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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권익위원칼럼
 
김중길 <청주적십자봉사회>

아무 일 없으리라고 안심하고 있을 때 뜻밖의 사나운 운수가 닥쳤다는 뜻으로 ‘삼경에 액을 만나다.’라는 우리 속담이 있다. 세월호에 몸을 싣고 기쁨에 들떠 꿈의 여행지 제주도로 향하다가 참변을 당한 400여명의 승객들이 그 지경이 되었다. 그러나 ‘뜻밖의 액운’이 아니다. 액운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예고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쇠한 선령의 선박, 무리한 증축, 소명감도 없고 책임의식도 갖춰져 있지 않았을 뿐 아니라 훈련과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선장과 선원들, 적정 초과의 불법적 화물 적재, 신속하고 효과적인 재난 관리는커녕 오락가락을 연발하면서 불신과 분노만 증폭시키는 등의 허점만을 노출시켜 온 정부 당국의 무능 등이 이번 참사를 더 큰 참변으로 키웠다. 슬픔과 분노가 파도처럼 거세다.

사람이 살다보면 크고 작은 재난과 마주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고 재난 앞에서 다 죽지는 않는다. 환난상휼의 미덕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환난상휼이란, 걱정거리나 어려운 일이 일어날 경우 서로 돕는다는 뜻이다. 혼자의 힘만으로 부족하면 공동체가 더불어 힘을 모아 재난을 극복하고, 새로운 희망의 씨를 함께 뿌리면서 내일을 준비한다. 이것이 재난을 극복하는 우리들의 사회학적 지혜였다. 그런데 이번의 참화는 그렇지 못했다.

선사 측의 부도덕함이나 선장의 무책임을 탓할 기운도 이젠 우리에게 남아 있지 않다. 그나마 우리를 위로하는 건 안산의 단원고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보여 준 아름다운 용기, 그리고 사랑과 희생이었다. 용기, 사랑, 희생의 중심에 우뚝 서 있는 이가 우리 청주 출신 남윤철선생님이다.

천주교 세례명 아우구스티노인 고 남윤철 선생은 단원고 2학년 6반 담임이었다. 생존학생들의 증언에 따르면 남선생은 선체가 급격히 기울어진 16일 오전 10시쯤 선실 비상구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먼저 탈출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명 보존을 생각하기에 앞서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챙겨주고 빨리 바다로 뛰어내리라고 외쳤다는 것이다. 안내방송에 따라 구명조끼를 입고 대기하고 있던 중 실내에 물이 차올라 더 이상 머무를 수 없게 됐을 때, 남 선생은 학생들의 등을 떠밀어 사지를 벗어나게 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배와 함께 물속에 잠기고 말았다. 또 다른 생존학생의 증언은 우리를 더욱 눈물겹게 한다. 가까스로 선체를 떠나 바다로 뛰어내린 학생들이 등 뒤에 계실 선생님을 바라보았으나 이미 남선생은 세월호와 함께 침몰해 푸른 바다가 돼 있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때 북받치는 설움이 죽음보다도 더 컸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희생을 통해 한 명의 제자라도 더 살리고자 했던 참으로 장하고 거룩한 살신성인의 사표였다. 그 때 살아난 학생이 어린 여섯 살의 목숨도 건졌다 하니 남 선생이야말로 사도의 부활이요, 인간학의 구현체였던 것이다. 신약성서 요한계시록의 말씀처럼 “하늘의 크고 이상한 이적을 보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느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 했으니 우리에게 더 이상의 재앙이 없기를 하느님께 빌고 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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