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호흡기
비상호흡기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4.04.23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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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동료끼리 모였을 때 여러 자리에서 물어보았다. 해외출장도 자주 가는 사람들이고 해서 이런 질문이 일반화될 수 있었다.

“비행기에서 공기호흡기가 천장에서 떨어지면 어린 아이부터 씌워야 합니까, 나부터 써야 합니까?”

의외다. 1/3가량은 ‘아이부터’라고 대답한다. 나머지 1/3은 머리좋은 사람들답게 ‘아이부터가 아니니까 물었겠지’라고 짐작하고, 나머지 1/3은 ‘어른부터’인 것을 안다.

비행기를 타면 승무원들이 늘 복도에 서서 하는 것이 비상시 요령 설명이다. 구명조끼를 당기면 자동으로 부풀어 오르지만 되지 않을 때는 입으로 불어넣으라고 하고, 긴 손가락으로 좌우의 비상구를 가리키며 알고 있으라고 지적한다. 비행기를 탈 때마다 늘 하는 것이 이것이다. 모니터로 하든지 사람이 하든지 꼭 한다. 그때 승무원들은 반드시 말한다. 어른부터 호흡기를 쓰라고.

왜 어린 아이부터 호흡기를 씌워야 하는가? 20대에 처음 외국을 나가면서 정말 이상했다. 아이부터지, 왜 어른부터냐? 애를 돌봐야 할 어른이 자기부터 챙기기냐? 마음도 그렇지, 어린아이부터 보살피게 되는 것 아니냐? 엄마라면 예쁜 자식부터 살리려고 본능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겠는가?

비상시 요령을 만든 그들도 이런 문제를 놓고 실랑이를 벌였을 것이다. 정서상의 문제도 있고 윤리적인 문제도 있다. 장유유서의 도덕도 있고 레이디 퍼스트의 가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이런 토론의 중심에 철학이 개입한다.

결론은 그랬을 것이다. 어린 아이를 챙기려다 어른이 혼절하면 둘 다 죽고, 어른의 정신이 말짱해야 애도 살릴 수 있다! 어차피 애들은 어른의 손길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 따라서 어른부터 공기호흡기를 써라.

이글을 보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 반은 아마도 아이부터 씌울 것 같다. 머릿속에 숙지되어 그렇게 하는 이유를 완전히 이해하지 않고서는 위급상황이 발생하면 사람들은 평상시처럼 행동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귀찮아도 매번 각성시키고 매번 훈련한다. 머리가 아니라 몸이 움직이게 연습하고 또 연습한다. 상황이 벌어졌을 때 그냥 차례대로 할 수 있도록 익히고 또 익힌다. 군대에서 매번 총검술을 하고 총기분해조립을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개머리판으로는 사타구니를 까고 총이 말썽이면 깜깜한 밤에도 분해조립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몸도 배운다. 타자나 자판을 두들겨 본 사람은 다 안다. 아니, 한자를 써 본 사람은 다 안다. 머리가 손가락더러 ‘ㄱ’이나 ‘ㅏ’를 치라고 해서 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손이 그냥 갈 뿐이다. 한자가 떠오르지 않아도 쓰다 보니 그려질 때가 있다. 머리가 아닌 손이 익힌 것이다.

자전거 타는 방법을 설명하라고 하면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러나 자전거를 탄다. 내 머리가 타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이 탄다. 세월이 지나서 자전거가 타질까 싶지만 한 번 배운 자전거는 평생 간다. 머리로는 잊었지만 몸이 잊지 않았다. 버릇이 있는 것은 배운 몸이고, 버릇이 없는 것은 배우지 못한 몸이다.

꽃다운 청춘이 희생된 2014년 4월은 살기 싫은 봄이다. 처참하고 미안한 봄이다. 그래도 살자. 남은 어린 생명에게 덜 떨어진 이 버릇없는 몸을 바치기 위해서라도 기운 차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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