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부모가 그려주는 원 속에서만 자란다
아이는 부모가 그려주는 원 속에서만 자란다
  • 유종렬 <전 음성교육장>
  • 승인 2014.04.22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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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유종렬 <전 음성교육장>

어느새 산에도 들에도 우리들의 마음에도 희망의 봄은 찾아왔다.

농부가 작물을 가꾸는 일이나 부모가 자식을 기르는 일이나 같은 이치가 아닌가 생각한다. 농부는 작물을 가꾸는데 온갖 정성을 쏟아 부으며 꽃이 피고 열매가 맺을 때까지 마냥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어제 심은 씨앗을 오늘 파보고 뿌리가 돋아낫나 성급하게 살피지 않는다. 매일 씨앗을 파보고 뿌리가 돋아낫나 살핀다면 그 씨앗은 끝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죽고 말 것이다.

교육도 이러한 원리가 아닌가 생각한다. 교육의 기본자세는 기다림이다. 농부는 1년을 기다리지만 교육은 16년을 기다려야 한다. ‘내 아이는 언젠가는 대어(大漁)가 될 것이다.’ 이러한 믿음은 부모가 가져야할 마음가짐이다. 비록 대어가 되어주지 않을지는 몰라도 부모는 반드시 이 꿈을 가져야 한다.

대어로 기르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성적이 학급에서 중간이었다고 좌절해서도 안 되고, 졸업 때 우등생이 되지 않았다고 낙심해서도 안 된다. ‘내 아이는 언젠가 대어가 될 것이다.’ 는 말 속에서 중요한 것은 ‘언젠가’란 말이다. 그것은 바로 시간을 의미한다. 한 아이는 16년의 교육기간을 지나는 동안 수없이 많은 탈바꿈을 하기 때문이다.

비록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빛을 보지 못했지만 고학년부터 공부를 잘하게 되는 아이도 있고, 늦은 아이는 중학생이 되어 뛰어나게 잘하는 아이도 있다. 이와는 반대로 초등학교까지는 공부를 잘하던 아이가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자꾸만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교육에서 성급한 지도는 무서운 독소가 되어 비교육적 결과를 가져오는 일이 많다.

‘내 아이는 언젠가 대어가 될 것이다.’ 이 말은 아이를 그대로 내버려 두어도 대어가 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농부와 같이 최선을 다하되 가까운 결과를 보고 조급해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아이는 부모가 그려주는 원 속에서만 자란다. 지나치게 강요하고 관리해 조그만 원 속에 넣어두면 아이는 그 원만큼만 자란다. 반대로 큰 원을 그려주면 그 속에서 활달하게 성장해 간다. 대어는 바로 이 원이 만들어 주는 것이다. 큰 연못을 만들어 주면 크게 자랄 것이고 작은 연못을 만들어 주면 작게 자랄 것이다.

대어로 기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적성을 살려야 한다. 의사가 될 능력이 없는 아이에게 의사가 되라고 한다든가, 예능에 소질이 없는데 예술가가 되라고 하는 것은 어릴 때부터 정신적인 부담만 주는 것이다.

자녀에 대한 사랑이나 기대가 지나치면 자녀를 바로 보지 못하게 되고, 자녀를 바로 보지 못하게 되면 적성이 무시되고 만다. 직업에는 인기가 있는 직업도 있고 인기가 없는 직업도 있다. 인기가 있다고 모든 사람이 그 직업을 가질 수는 없는 일이다.

직업이 다양하듯이 사람의 적성도 다양하다. 그러므로 새롭고 유망한 직업에만 집착할 수는 없다. 모든 것은 자녀의 적성에 따라 직업을 선택하도록 하여야 한다. 아이들의 적성을 살리는 교육이 바로 대어로 기르는 교육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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