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면목으로 고개를…
무슨 면목으로 고개를…
  • 이재경 기자
  • 승인 2014.04.20 20: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부국장<천안>

어른들이 고개를 들 수가 없다. 무슨 얘길 해주고 무슨 면목으로 아이들을 볼까.

이 끔찍한 참사는 전혀 남의 얘기가 아니다. 우리의 딸, 아들, 젊은 청춘들이 저 깊은 바닷속에서 아직도 신음하고 있다. 눈은 못 뜨더라도 빨리 나와서 부모의, 사랑하는 가족의 품에 안겼으면.

사고는 이미 예견됐다. 그토록 강조했건만 우리 사회의 안전시스템은 여전히 후진국 수준을 면치 못했다. 더구나 이번엔 피어보지도 못한 어린 꽃들이 희생됐다. 전체 476명의 탑승객 중 수학여행길에 오른 안산 단원고 학생들은 모두 325명. 이 중 75명만이 구조됐을 뿐 나머지 250명은 사망·실종상태다.

실낱같은 희망은 절망으로 변해가고 있다. 어제 본격적인 선내 진입구조 작업이 시작됐지만 시신만 계속 수습되고 있다. 공기가 차 있는 공간 ‘에어포켓’에 갇혀 살아남아 있을지 모르는 실종자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구조대원들의 사투가 눈물겹다.

이번 사고가 인재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멀쩡히 잘 가던 배가 갑자기 전복됐다. 배가 급커브를 틀면서 기울어지는 과정에서 무거운 적재물들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복원력을 잃고 그대로 좌초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배가 가라앉는 상황에서 납득하지 못할 일들이 벌어졌다. 승객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탈출을 진두지휘해야 할 선장은 되레 승객을 더 깊은 사지로 몰아넣어 버렸다. 비숙련자인 3등 항해사에게 키를 맡긴 것도 모자라 가장 먼저 배에서 탈출했다.

TV에 비친 그의 모습, 담요를 뒤집어쓰고 승객들과 함께 항구에 나타나 태연히 돌아다니던 모습은 온 국민을 분노하게 했다. 어처구니없는 건 단 한명의 승객이라도 더 구할 수 있었는데 그 길을 선장 등 지휘부가 막았다는 점이다.

처음 배가 기울고 나서 선내에는 “안전벨트를 매고 자리에 앉아 있으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배에 물이 차 기우는 일촉즉발의 그 절박한 상황에 승객·학생들은 안내 방송에 따라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배가 전복되는 상황을 감지했으면 곧바로 승객들을 탈출이 용이한 장소로 이동시켜 구명정에 탑승하게 해야 했는데 되레 승객들을 가둬버렸다.

초기 대응만 제대로 했더라도 최소한 100여명은 더, 상황에 따라서는 더 많은 인명을 구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외신들은 이번 참사를 보도하면서 세월호 선장의 비인도적 행위를 비난하고 있다. 뉴욕타임즈는 “(세월호 선장이)바다에서 명령하는 위치에 있는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수치를 안겼다”고 말하는 전 미국 잠수함 함장의 인터뷰를 전했다. 승객들과 함께 생사를 같이하지는 못할망정 제일 먼저 배를 탈출한 선장의 행태가 대한민국 국격까지 훼손한 것이다.

19일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 ‘세월호 승무원 고 박지영씨를 의사자로 모셔 국립묘지에 안장하자’는 청원이 진행 중이다. 10만명 서명이 목표인데 2만여명을 넘어섰다. 박씨는 사고 당시 3층 식당에 남아 20여명의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입혀 탈출시킨 뒤 미처 빠져나오지 못해 숨진 채 발견됐다.

어려운 형편으로 대학을 휴학하고 여객선에서 비정규직 아르바이트를 하던 앳된 22세의 여성. “승무원은 나중에 탈출하는 거야. 너희 다 구하고 나갈게”라고 말하며 끝까지 배를 지킨 박씨. 2014년 4월, 대한민국이 그에게 어떤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있을까. 아직 바다에서 나오지 못한 아이들에게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