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의 웃음
민들레의 웃음
  • 이효순 <수필가>
  • 승인 2014.04.20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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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이효순 <수필가>

봄이 한창이다. 초록빛 싱그러움 속에 핀 노란 꽃.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방긋 웃는 민들레다. 민들레는 이름이 우선 정답고 친근한 민중의 풀이다. 소박한 우리들의 꽃이라 할 수 있다. 집주변의 골목, 가로수 아래 보호대 안쪽, 보도블럭의 틈새, 그리고 광장의 잔디밭, 벽이 막힌 담밑, 심지어는 시멘트벽 사이에서도 살고 있다. 이런 곳에서 그들은 노란 웃음을 보는 이들에게 가득가득 안겨준다. 아주 샛노란 밝은 웃음이다.

어린 시절 옆집 아주머니댁 굴뚝이 있는 텃밭 옆에는 봄이면 쑥이 많이 있었다. 지금도 눈에 선한 것은 잡초와 쑥 사이에서 연한 꽃을 피우던 흰 노랑민들레다. 굴뚝 주변이라 햇살이 곱고 따듯해 그곳은 아이들도 자주 와서 민들레꽃도 꺾고 나물도 뜯었다. 그 옆엔 노란 골담초도 있었던 것이 눈에 선하다. 꽃을 꺾으면 하얀 액체가 줄기에서 나와 손에 끈적거리는 진이 묻는다. 그것을 입에 대보면 아주 쓴 맛에 눈을 찡그리며 놀던 기억이 아련하다.

민들레는 많은 사람의 노래와 문학작품 등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또한 약효가 좋다 하여 사람들의 손에 많이 훼손되기도 한다. 그만큼 민들레가 사람들과 친숙하다는 의미가 아닐까.

산책길에 갈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작은 꽃 노란색이다. 해가 나면 오므렸던 꽃송이를 활짝 펴서 사람들에게 방긋이 환한 웃음을 전해준다. 한결같은 것은 먼지 나는 길가, 호젓한 산책길,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옆 가장자리, 찻길의 먼지가 쌓이는 신작로 옆 모두 사는 곳은 다르지만 같은 웃음으로 사람을 반기는 모습에 잠시 사색에 잠기게 한다.

이렇듯 민들레는 불평 한마디 없이 가장 어려운 조건에서도 강한 생명력으로 사람들의 발길에 밟히면서도 꽃을 피운다. 신기한 것은 햇살이 밝게 비칠 때 환하게 웃던 얼굴이 해가 지면 다시 오므려 잠을 잔다. 또한 비가 오거나 날씨가 흐리면 얼굴을 감추고 해를 기다린다.

민들레가 이렇게 해를 그리워하는 것은 민들레 꽃잎 뒤에 달린 물주머니 때문이라고 한다. 햇볕이 없을 때는 물 주머니에 물이 가득 차 있어 꽃잎을 밀어올리므로 꽃잎이 닫히고 햇볕을 쬐면 물주머니의 물이 증발해 꽃잎을 받치는 힘이 약해져서 꽃잎이 활짝 펴지게 된다고 한다. 참 신기한 꽃이며 기이한 자연현상이다.

또한 꽃이 지고 나면 솜사탕처럼 보드랍고 공처럼 둥근 꽃이 다시 핀다. 흰색의 갓털(씨방의 맨 끝에 솜털처럼 붙은 것)이다. 갓털은 스스로는 못 움직이고 바람이 불거나 사람의 스침에 따라 먼 여행을 떠난다. 더러는 어린 아기들이 그것을 꺾어 입으로 불어 날리기도 한다. 이렇게 날아간 갓털들은 다시 새 생명으로 변화되어 많은 민들레로 태어난다.

대문 옆 민들레를 꺾어 갓털을 볼에 대어본다. 실크처럼 보드랍다. 지난해 보도블럭 사이에 있는 민들레를 뽑다가 싹이 잘라졌는데 얼마 지난 후엔 더 많은 싹이 수북이 올라왔다. 마치 자기를 자른 나를 향해 시위하는 것처럼. 집 근처 골목의 민들레는 우리 집에서 키우던 민들레의 갓털들이 날라 보도블럭 틈새에서 삶의 터를 마련했다. 어디서 날아들었는지 흰 민들레도 보인다. 아마 어머니 산소 가는 길에 받아 온 씨앗이 날아가 발아된 것 같다.

민들레를 보며 많은 생각에 젖는다. 겨울에는 긴 뿌리를 땅에 내려 생명을 유지하고 한 송이의 꽃에서 아주 많은 씨앗을 만들어 여러 곳에 자신의 분신을 퍼트린다. 그래서 삶의 터전을 넓혀간다. 쉽게 포기하는 우리 인생들과는 달리 많은 것을 사람들에게 전해준다. 4월의 날씨처럼 맑은 모습으로 전해주는 민들레의 웃음은 오래도록 변치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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