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포ㆍ세종ㆍ아산의 ‘벙어리 냉가슴’
내포ㆍ세종ㆍ아산의 ‘벙어리 냉가슴’
  • 조한필 기자
  • 승인 2014.04.15 20: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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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조한필 부국장 <천안·아산>

내포신도시와 세종ㆍ아산시에 벙어리 냉가슴을 앓는 사람들이 많다. 입주 예정이거나 살고 있는 아파트가 ‘위기’에 처했으나 불만의 목소리나 하소연을 못하고 있다. 자신의 직장 신분 때문이다.

석달 넘게 입주가 지연되고 있는 내포신도시 아파트와 ‘철근 없는’ 세종시 아파트의 입주 예정 공무원들, 아산 탕정트라팰리스의 삼성그룹 직원들은 목소리를 높여 시공사나 시행사를 성토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4일 오전 9시 30분, 내포신도시의 극동스타클래스 아파트 입주자 대책위원회 임시 사무실. ‘공사판 사전 점검’이 이뤄지는 가운데 충남도 배지를 단 50대 공무원 2명이 찾아왔다. 이들은 대책위 총무에게 “내부공사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사전 점검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도대체 감리회사는 뭐 하는 거냐. 우리가 낸 분양금으로 감리를 하면서 이런 지경까지 이르게 했냐. 감리회사부터 고소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이들에게 근무 부서와 자세한 불만 사항을 묻자 대답을 피했다. 극동아파트(938가구) 입주예정자 중 공무원은 283명이다. 대전에서 내포신도시로 옮긴 충남도청ㆍ충남경찰청ㆍ충남교육청의 공무원들이 이 아파트 계약자 30%를 차지하고 있다.

도청의 입주 예정자 211명은 지난해 극동건설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대책위를 발족했지만 뚜렷한 활동은 자제해 왔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참을 수는 없다”며 최근 대책 마련 모임을 했다. 하지만 민간입주자 대책위가 준비 중인 분양피해 정밀 조사 및 소송 준비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있다. 공무원 신분으로 집단 행동하는 모양새는 보이지 않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타들어가는 속을 감출 수는 없었다. 한 공무원은 “도청 이전으로 하는 수 없이 현지 아파트 청약을 했는데 공사가 이렇듯 불안하니 누굴 원망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충남도가 나서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했다. 이를 보는 주위 시선도 안타깝다. “아파트가 가장 큰 재산인데 공무원들 일손이 제대로 잡히겠느냐”라는 반응이다.

이런 곳이 2곳 더 있다. 세종시의 ‘철근 없는 아파트’. 내포신도시보다 상황이 훨씬 심각하다. 11월 준공 예정인 모아미래도 아파트는 전체 723가구 중 70% 가량(500여 가구)이 공무원이다.

세종청사 공무원노조연합회는 지난 7일 “해당 아파트를 분양받은 공무원뿐 아니라 모든 공무원은 이번 사태에 분노를 금할 길이 없다”며 즉각적인 재시공을 요구했다. 하지만 입주예정자 시위에는 참석하지 못한다. 마음은 굴뚝 같지만 공무원이 “철근 없이 살수 있냐? 너희들이 살아봐라!” 피킷을 들 순 없다.

또 1곳은 아산의 탕정디스플레이단지 옆 삼성 사원아파트 트라팰리스. 입주 5년이 넘어 소유권 이전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데 2225세대 삼성 가족은 좌불안석이다. 분양 초기부터 가격이 비싸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삼성이 하는 일’이라 믿었다. 결과는 대실망이다. 아파트 시세가 주변보다 크게 못 미치는데 ‘소유 이전을 하든가, 기존 납입금을 찾아가든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인사상 불이익을 당할까 목소리 한번 시원하게 내지 못한다.

이들은 충남도·정부부처·삼성을 믿고 현지에 이사해 근무하려고 아파트를 청약했다. 공무원·삼성직원이기 전 생활인이다. 아파트는 가족 행복을 좌우하는 큰 자산이다. 소속 기관, 회사가 나서서 벙어리 냉가슴 심정을 헤아려 보듬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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