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노역과 세 모녀의 죽음
황제노역과 세 모녀의 죽음
  • 기원 <편집위원·문화비평가>
  • 승인 2014.04.14 19: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청논단
김기원 <편집위원·문화비평가>

세상에 이럴 수가.

얼마 전 생활고 때문에 동반 자살한 세 모녀의 안타까운 죽음을 보고 많은 국민들이 눈시울을 적셨는데, 그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의 일당 5억 원 황제노역이 불거져 온 국민이 경악하고 분노하고 있다.

‘주인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유서와, 아픈 딸 치료비로도 차마 쓰지 못했던 70만원을 남겨 놓고, 죽는 순간까지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했던 서울 송파의 세 모녀.

그들의 죽음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늘인 복지 사각지대에 대해 울리는 복지의 경종이었다.

가난한 자의 징벌적 구제수단인 환형유치제도가 파렴치한 경제사범에게 하루 노역비로 5억 원씩 탕감해 주는 특혜의 도구로 둔갑되었다.

이런 황당한 처분의 기저에 향판(고향에서 장기간 재직하는 판사)이 있었다. 법관들도 인간인지라 고향에서 장기근속 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지역유지들과 소통하게 되고 이런저런 인연을 맺게 되므로, 관련 송사에 온정적인 판결을 할 개연성이 있는 것이다.

허재호의 황제노역 처분은 우리 사회에 회자되고 있는 이러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불평등한 법적용에 대해 울리는 법치의 경종인 것이다.

한 때 지역 언론과 지역재벌 오너로 군림하며, 지역 기관장들과 법관들까지 우군으로 만들어 위풍당당하게 살았던 허재호. 그는 무리한 사업 확장과 경기불황으로 사세가 기울자, 재산을 부인 명의와 여타 방법으로 국내외로 빼돌렸고, 세금과 벌금을 내지 않기 위해 뉴질랜드로 도피해 호화생활을 하다가 교민들에게 발각돼 여론이 악화되자 소환되어 법정에 서게 되었다.

이처럼 부자인 허 회장의 황제노역과 빈자인 세 모녀의 동반자살은 오늘날 한국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그 속에 오늘 우리가 산다. 생각할수록 황당하고 어처구니없어 화가 나지만 그렇다고 딱히 어찌 할 방도가 없으니 자괴감마저 든다.

하여 일당 5억 원의 황제노역을 처분한 법관들에게 묻는다. 대저 당신들의 월급과 연봉이 얼마이기에 그런 처분을 내리는가? 5억 원! 서민들은 평생 뼈 빠지게 일해도 손에 쥘 수 없는 꿈같은 돈이다. 짐수레를 끌고 골목길을 누비며 하루종일 폐지를 주워 팔아도 단돈 2만 원을 손에 넣기 어렵거늘, 쇼핑백 만드는데 드는 풀칠 작업 일당이 5억 원이라니.

이 시대의 현자인 그대들에게 다시 묻는다. 법이란 무엇인가? 법관의 존재 가치란 무엇인가?

법은 공정사회를 해치는 모든 인간의 행위와 작용에 대해 차별 없이 심판하는 잣대이고, 그 지향점은 약자 보호에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법에 안도하고, 그 법을 엄격히 적용하는 법관들을 존경하며, 그들을 믿고 마음 편히 생업에 종사한다.

그런데 법이 권력자와 가진 자들의 보호막이 되고, 약자와 가난한 자들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수단으로 기능하면 세상은 어찌되겠는가? 약자들은 기댈 언덕이 없어지고, 사회는 균형추를 잃어 혼돈에 빠질 것이다.

모름지기 입법 취지와 목적대로 투명하고 공정하게 법이 운용될 때, 법이 살아 있다고 말함을 그대들이 더 잘 알 터.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나 이제나마 대법원이 문제가 되고 있는 향판제도와 환형유치제도를 손질하겠다고 하고, 정치권 또한 복지사각지대 최소화를 위해 세 모녀 방지법을 제정한다 하니, 두 눈 크게 뜨고 지켜볼 일이다.

아무쪼록 이번 세 모녀의 죽음과 황제노역 문제가 우리 사회의 복지와 법치의 건강성을 증진하는 기폭제가 되기를 희원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