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 정선옥 <음성도서관장>
  • 승인 2014.04.10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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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권하는 행복한 책읽기
정선옥 <음성도서관장>

책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반짝이는 은박의 눈송이가 곱다. 아이가 어릴 때는 한 겨울 나풀나풀 눈이 내릴 때 커다란 눈송이 찾기 게임을 했다. 유난히 큰 눈송이가 보이면 ‘엄마 눈송이, 아빠 눈송이’하며 눈이 바닥에 떨어질 때까지 아이와 함께 시선을 고정했다. 일본 소설 ‘눈보라(사이토 마리코 저)’의 한 구절에서 제목을 따온 도서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은희경 저)’는 아이와 즐겼던 눈에 대한 추억을 떠오르게 한다.

사서라는 직업적인 책임감으로 인터넷 서점 홈페이지에 자주 들어간다.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 예약 판매 글을 보면 설레는 마음으로 신청을 하고 책이 도착할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이 책도 저자의 이름만으로 선뜻 책장을 펼칠 만큼 반갑다.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수상자답게 여섯 편의 단편은 각각의 색깔을 지니고 적당한 무게로 매력을 한껏 발산했다.

그의 시선은 늘 세상에서 한 발짝 물러선 채 맴돌지만, 결국에는 제 자리로 돌아오는 긍정성을 잃지 않는 사람들에 머문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일상에서 스치는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나만의 특별한 매력을 갖고 있는 단 하나의 눈송이다.

친구 사이인 안나와 루시아 그리고 요한에 얽힌 이야기인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는 안나가 크리스마스 때 좋아했던 요한을 만났지만 큰 실수를 하고는 도망치듯 사라졌던 옛 추억을 떠올리는 내용이다. ‘어쩌면 세계란 처음엔 잘 열리지 않는 방문과 탁자와 침구와 그리고 여행 가방을 기본단위로 이루어져 있는지도 모른다.’는 ‘스페인 도둑’의 주인공 완의 글이 와 닿는다. ‘프랑스어 초급과정’은 신도시로 이주한 여성이 새로운 삶에 적응을 못하고 좌절을 거듭하지만 작은 희망을 안고 살아가는 이야기다. 미국으로 이주한 모자의 험난한 삶과 개러지 세일로 위안을 받는 ‘T 아일랜드의 여름 잔디밭’은 생생한 외국 정착기에서 슬픔이 느껴진다.

책을 읽으면서 미국의 여류 작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올리브 키터리지’가 생각났다. 개인의 일상을 다룬 내용이면서 결말 속 반전의 신선함이 닮았다. 고단한 삶이지만 칙칙하지 않은 점에서도 유사한 구성이다.

여섯 편의 소설은 독립적인 단편이면서 옴니버스처럼 이어진다. ‘눈송이’의 주인공 안나는 ‘T아일랜드의 여름 잔디밭’에 등장하는 소년의 엄마와 오버랩된다. 또한 안나는 ‘금성녀’의 옆집 하숙생으로 연관짓게 된다. ‘프랑스어 초급과정’에 등장하는 여성과 임신한 태아는 ‘스페인 도둑’의 어머니와 완으로 연결된다. 이런 자유로운 상상은 소설 읽는 즐거움을 안겨준다.

은희경 소설은 주인공을 아름답게 포장하거나 미화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현실에 안주하기 보다는 낯선 삶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임을 강조한다. 작은 희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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