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합성 노동
광합성 노동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4.04.09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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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7, 8년 전 이사 오면서 황량한 집에 식물은 있어야 할 것 같아 동네에 트럭을 몰고 와 좌판을 열어놓은 화원 아저씨에게 화분 두 개를 샀다. 하얗고 네모나 보기 좋은 화분이었는데, 하나는 새집 증후군에 좋다는 산세베리아였고, 다른 하나는 그런대로 나무의 느낌이 나는 폴리셔스였다. 큰 화분, 작은 화분과 더불어 나는 살림을 내고는 처음으로 새집 생활을 시작했다.

산세베리아는, 사람들이 모를 것 같아 말하는데, 이놈이 의외로 물을 좋아해서 수경(水耕)이 가능하다. 줄기가 떨어져 버리기 아까워서 물에 담아봤는데, 이게 웬일, 뿌리가 나오는 것 아닌가. 작은 줄기는 작은 대로, 큰 줄기는 큰 대로 산다. 다만 경험상 작은 줄기가 오히려 다 큰 줄기보다 잘 산다. 큰 것은 가끔은 썩기도 하는데, 작은 것은 떼어놓아도 그 옆으로 새끼를 쳐서 올망졸망하게 잘 큰다.

떼어진 작은 줄기의 산세베리아를 학교로 가져와 작은 도자기 병에 넣어두었는데, 이 사람 저 사람 떼어가서 지금도 여전히 조그마하다. 나는 그것을 ‘시집보냈다’고 한다. 가끔 다시 놀러 오면 ‘며느리, 잘 살아?’라고 묻는다. 죽으면 서러워하지 않고 다시 시집을 보내니, 이런 장인은 나 말고는 없다.

폴리셔스는 잎이 무성해서 보기 좋았다. 어느덧 커서 키가 나만한데, 잎이 한쪽으로 너무 모이면 가지가 기울어지는 것 같아 가끔씩은 방향을 돌려주곤 했다. 그러면 햇볕 뒤쪽의 잎새를 스스로 떨군다. 나는 그 녀석의 한산한 분위기가 맘에 들었다.

그런데 폴리셔스가 요즘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잎을 마구 떨구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는데 너무 많이 한가해졌다. 그래도 나는 괜찮다고 여겼다. 왜냐면 새순이 계속 치고 올라왔기 때문이다. 무슨 까닭에서인지 잎을 떨구고 있지만, 그래도 생명력을 보여주니 문제가 없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그런데도 너무 심했다. 비료도 줘보고, 물도 자주 줘봤지만 여전했다.

그래서 화원에 데려다 주기로 했다. 병원이라고 생각해서 당분간이라도 입원을 시킬 요량이었다. 잘 생긴 화원주인은 품위 있게 차를 즐기고 있었는데, 그의 진찰은 이랬다.

‘아마도 탈수가 생긴 모양입니다. 근래가 아니더라도 언젠가 탈수가 되어 자기조절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줄기가 새로 나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문제가 없는 듯합니다. 그냥 가져가세요. 그런데 햇볕이 없는 쪽으로 놔주세요. 광합성이 너무 버거울 수가 있습니다.’

참네, 무조건 햇볕을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화원주인의 말로는 ‘몸이 약할 때 너무 일 시키지 말라’는 것이었다. 광합성도 노동이라서, 힘들 때 더 힘들게 만들지 말고 쉬게 하라는 진단이었다. 나는 나무가 무조건 햇볕을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광합성도 많이 하면 좋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무도 쉬게 하라?

생명은 이렇듯 쉬어야 한다. 그러나 현대인은 노동이 아닌 ‘과노동’에 시달린다. 최근에 학회에서 과노동 사회라는 개념을 배웠는데, 식물에게도 적용된다니 놀라울 일이다. 우리나라의 노동시간은 OECD 가입국 가운데 연간 2,316시간으로 2위인 헝가리보다도 300시간의 격차를 보인다.

평균 1,768시간과 견주어보았을 때, 548시간은 8시간 노동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두 달을 더 일하는 꼴이다. 그런데 토·일요일과 공휴일을 빼면 하루 9시간여에 불과하다. 한국인 가운데 이렇게 일하는 것을 과노동이라 할 사람은 없을 테니, 정말 노동중독사회다. 나무와 더불어 그늘에서 쉬어보자. 광합성을 멈추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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