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잎 클로버의 여행
네 잎 클로버의 여행
  • 이효순 <수필가>
  • 승인 2014.04.06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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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이효순 <수필가>

프라하공항에서 아홉 시간의 비행기 탑승 후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달이 바뀌었다. 3월 중순이 지나 출국 후 10일이 지난 셈이다. 동유럽 5개국을 돌아보며 나름대로 분주했지만, 마음은 편안했다. 주부들이라 때되면 걱정하던 식사시간이 준비된 밥상과 뷔페가 힘든 생활을 잠시 벗어나게 했다. 모처럼 남편들도 동행하여 조심스러웠으나 즐겁고 끈끈한 우정으로 이어진 여행이었다.

청주행 버스에 오른다. 차창 밖 산천엔 봄이 한창이다. 수채화처럼 곱게 보인다. 고향의 어머니 품처럼 정겨움이 가득 묻어나는 분홍 진달래꽃. 마음으로 밀려드는 설렘에 숨이 막힌다.

아직도 꿈은 그곳에 남아있는 걸까. 출국할 땐 봉오리만 조금 부풀었던 꽃들이 활짝 피어 눈 안에 가득 담긴다. 분홍진달래, 노란 개나리, 자줏빛 목련, 봄바람에 하늘거리며 움트는 수양버들. 4월의 풍경은 마치 생명이 약동하는 말 없는 숲 같다. 잎이 없는 가지에 모두 다른 새순이 4월과 함께 피어나는 모습이 경이롭다.

신은 이렇게 나무와 풀에도 생명을 불어넣으시고 우리 사람에게 다스리도록 권리를 주셨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몸은 피로하지만, 며칠 만에 온 누리에 가득한 4월은 생명의 등불을 켜든 것처럼 밝고 깨끗하며 산뜻하다.

대문을 연다. 노랗던 수선화는 벌써 지고 히아신스가 곱게 피었다. 보이지도 않았던 앵초도 어느덧 싹을 틔우고 꽃봉오리를 맺었다. 꽃밭은 초록빛으로 봄을 펼치고 보랏빛 빈카마이너는 신비로운 자태를 더욱 뽐내고 있다. 여행에서 돌아온 나를 반갑게 맞이하는 것처럼.

동유럽 주택 주변은 아주 작은 공간에도 몇 포기의 꽃을 심는다. 보는 사람도 마음이 평안한데 심는 마음은 어떨까. 가장 많이 보았던 꽃이 수선화이다. 그 모습에서 그들은 마음의 여유가 있다는 것이 은연중 생활에 배어났다. 초등학교 다닐 때 알뿌리 화초로 수선화, 튤립, 히아신스를 자연책에서 본 것이 어렴풋이 생각난다. 당시 우리나라에선 볼 수 없는 꽃들이었다. 그림으로 그려놓은 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글로벌 시대가 되면서 세계는 하나가 되었다. 꽃도 이젠 나라마다 비슷하고 향토적인 특색이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다.

여행지는 5개국이었으나 건축물이 비슷하고 왕궁이 있는 곳엔 반드시 성당, 광장이 있었다. 정원은 안정감이 있는 불란서식 정원으로 계절에 따라 피는 꽃을 바꾸어가며 심는다고 한다. 거리에는 젊은 악사부터 노 악사까지 클래식의 선율이 이어지고 여행객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기타연주를 하는 노 악사 옆에서 친구가 사진을 담아 주었다. 지나쳐오다 보니 동전을 넣는 작은 통이 보였다. 그곳을 무심히 지나온 자신이 부끄러워 아직도 아쉬움이 남는다. 작은 마음이라도 표시하지 못했던 것을.

어린 시절 한 반 친구 넷은 긴 세월을 교단과 가정생활을 함께하며 무사히 보냈다. 그리고 명예로운 정년을 마무리한 후의 기념여행이었기에 더 의미가 깊었다. 퇴직하면 한번 남편들과 함께 가자고 일정기간 모은 경비였다. 그것이 현실로 이뤄지면서 또 한 편의 삶의 흔적을 남겼다.

우린 모두 화려한 백수가 되었다. 하지만 친구들(네잎클로버)과 함께했던 시간은 고운 추억으로 내 마음에 선명히 남는다. 볼프강 호수에서 타고 바라보던 이국 경치, 미라벨 정원, 쉘브른궁전, 아우슈비츠 수용소, 비엘리치카 소금광산, 다뉴브 강 크루즈를 타고 감상하던 부타페스트의 밤 풍경은 단순한 조명과 하늘의 달과 별, 우리의 우정이 하나 된 한 폭의 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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